5일 동아일보사 회의실에서 열린 기업지배구조 개선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한국기업이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업지배구조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왼쪽부터 조동성 서울대 교수,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박주일기자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가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최근 지배구조 개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주주 권익의 보호와 투명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사외이사제도와 집중투표제가 도입됐고 허위 또는 부실 공시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 본보는 SK 사태를 비롯한 지배구조 관련 변화가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 한국기업의 바람직한 지배구조 모델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김정호(金正浩) 자유기업원장, 장하준(張夏準)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 조동성(趙東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이상 가나다순)가 참석했다. 사회는 이원재(李院宰) 본보 경제부 차장이 맡았다.》
▽사회=12일로 예정된 SK㈜ 주주총회에서 SK㈜와 소버린자산운용이 표 대결을 앞두고 우호세력을 늘리기 위해 위임장 확보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가.
▽김정호 원장=전반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있다. 소버린측이 요구하는 것은 투명성과 계열사를 지원하지 않는 독립경영으로 요약된다. 투명성에 대해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그러나 독립경영 문제는 조금 신중히 생각해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목적은 좋은 경영성과를 위한 것인데 계열화한 기업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나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장하준 교수=SK㈜의 경우 좋든 싫든 기업지배구조 문제의 선두주자가 돼 있다. 그러나 SK㈜처럼 사외이사 중심체제로 가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외이사가 어느 정도 대주주를 견제하는 것은 맞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사외이사는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 유럽 대부분 기업에는 사외이사 수가 사내이사보다 훨씬 적다. 르노의 경우 17명 중 5명이다. 사외이사가 많은 게 옳은 것은 아니다.
▽조동성 교수=나는 걸프오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석유산업의 전문가이다. SK㈜가 한국의 대표적 석유회사인데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SK㈜가 앞으로 선도적 기업이 되어야 한다. 지배구조 관점에서 사외이사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조 교수는 소버린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중의 1명이다.)
▽사회=포스코가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를 위해 집중투표제와 서면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많은 기업에서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 사외이사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접근해 기업의 전략적 투자를 저해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한국기업의 기업지배구조는 개선되고 있는 것인가.
▽조 교수=사외이사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외이사들이 지배주주에 의해 뽑혔기 때문에 그렇다. 선임 절차와 방식을 고치면 얼마든지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모 기업의 사외이사를 11년 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반대표를 많이 던졌다. 대표적으로 100년짜리 채권을 확정이자로 발행하겠다는 것을 반대했다. 당시 경영진에 의해 선임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장 교수=영국에서도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종종 표현된다. 안전성 위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사외이사 문제는 사회적으로 더 논의해야 한다. 경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외이사는 이른바 ‘예스맨’이 되든지 아주 보수적인 판단만 내릴 공산이 크다.
▽사회=지난해 SK글로벌 분식회계나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계기로 대주주 견제 및 감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소액주주나 외국자본, 기관투자가 그리고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김 원장=일상적인 경영 개입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사외이사 등 사람을 배치하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집중투표제 등으로 2대 주주나 3대 주주가 만약 이사회에 들어간다면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한다. 집중투표제가 소액주주를 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2대 주주나 3대 주주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정직하지 않으면 대주주에게 자신의 지분을 높은 가격에 되팔려는 ‘그린 메일’이 극성을 부릴 수 있다.
▽장 교수=(대주주 견제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기업이 계열사를 도와주는 것을 무조건 막았다면 노키아 같은 회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목재사업에서 시작해 고무장화 전선 전화교환기 등을 만들어 온 노키아의 전자사업부가 흑자를 내는 데 17년이나 걸렸다. 미국식으로는 생겨날 수 없는 구조다. 일본과 같이 종업원이나 주거래은행 같은 이해당사자가 개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장기이익을 위해서는 이들의 목소리가 기업에 반영돼야 한다.
▽조 교수=기관투자가와 외국자본은 주주와 경영진이라는 ‘2권 분립’ 구조에서 평형을 이루게 하는 하나의 축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이 역할을 해주면 좋지만 정경유착으로 인해 경영진의 편이었다는 것을 우리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자본에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외국자본이 기본 주주 및 경영진과 함께 ‘3권 분립’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및 경영 투명성이 개선될 경우 주가 프리미엄이 20∼23%에 이른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주주 중시로 표현되는 지배구조개선과 기업의 경영성과 간의 관계는….
▽김 원장=주주가치 경영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의 경영성과와 주가가 오르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월스트리트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공시하면 똑같은 이윤을 냈더라도 주가는 오를 수 있다. 소액주주와 (경영권을 가진) 지배주주의 관계를 볼 때 지배주주는 장기적인 이익에 관심을 갖지만 소액주주는 그러기 힘들다.
▽장 교수=국가 경제를 생각한다면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이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다. 주주들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그룹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해서 지주회사로 가거나 브랜드를 공유하는 느슨한 그룹체제 등 재벌시스템이 진화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바람직한 지배구조 모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장 교수=지배구조라는 것은 정답이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BMW 포드 푸조 등은 창업자 가족이 운영하고 있고, 르노와 폴크스바겐은 정부나 지자체가 최대 주주다. 크라이슬러는 도이체방크가 최대 주주다. 세계에서 GM 정도가 사외이사를 많이 두고 있는 기업이다. 투명성은 반드시 실현돼야 하지만 그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을 지배하는 다양한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가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 원장=지배구조에 정답이 없다는 데 공감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기업지배구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자본이 들어오면서 한국인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래서 외국자본이 자기들의 방식을 요구하는 것이며 투자자로서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것은 해당 기업에 국한돼야지 한국기업 전체로 확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조 교수=20년 전에는 대두되지 않던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국제화 때문이다. 다른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갈등과 마찰이 생긴 것이다. 이런 갈등은 시장에 맡겨 풀어나가면 된다. 갈등이 노출되는 지금의 한국 상태는 건강하다고 본다. 올바른 기업지배구조 자체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사회=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를 위해 기업들은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고 정부는 어떤 뒷받침을 해야 하는가.
▽김 원장=기업의 경영진은 기관투자가나 외국인투자자를 찾아다니며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야 한다. 주총장에서 위임장 대결을 하는 사태로 가기 전에 평소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가능하면 손을 떼야 한다. 예를 들어 집중투표제도 도입 여부를 개별기업이 판단토록 해 스스로 검증하도록 해야 한다.
▽장 교수=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적합한 방식은 정치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외국기업과 한국기업을 역차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채비율을 내세워 기업을 옥죄는 것은 삼가야 한다. 부채비율에 정답은 없다. 규제 때문에 기업은 돈이 많아도 투자를 하지 않는다. 정부는 또 기업에 대해 막연한 적대감이 있는 사회 정서를 없애야 한다.
정리=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참석자 프로필(가나다순)
김정호(金正浩) 자유기업원장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석·박사 △숭실대 법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청와대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 근무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자유기업원 부원장
장하준(張夏準) 英 케임브리지대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박사 △유엔 무역개발기구 근무 △고려대 교환교수 △뮈르달상 수상
조동성(趙東成) 서울대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미국 피츠버그대 객원교수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초청 부교수 △일본 도쿄대 초청교수 △산업정책연구원장 △서울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