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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블록버스터…과학자가 ‘작품’ 만들었다

입력 | 2004-03-07 18:10:00

'니모를 찾아서'의 자문과학자 에덤 서머스. 현재는 빈 캘리포니아대 교수다.


《1일 제7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니모를 찾아서’(이하 ‘니모’)가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차지했다. 이에 앞서 세계적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지난달 19일자에 논문만을 싣는 관례를 깨고 ‘니모’의 자문과학자 애덤 서머스 박사의 인터뷰를 실었다. ‘니모’뿐 아니라 ‘쥬라기공원’ ‘딥 임팩트’ ‘아마겟돈’ ‘콘택트’ ‘체인 리액션’ 등의 영화에서도 자문과학자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과학을 찾아서=‘니모’는 픽사와 디즈니가 함께 만든 3억4000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로 2003년 전세계를 강타했던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많은 해양생물학자들도 높이 평가할 정도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제작된 것으로 유명하다.

서머스 박사가 ‘니모’와 인연을 맺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2000년 초 서머스 박사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어류 생체역학 분야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 근처에서 방을 구했는데, 하숙집 여주인이 픽사의 아트디렉터였던 것.

이후 서머스 박사는 픽사 스튜디오에 출근하면서 감독 겸 작가인 앤드루 스탠턴을 비롯한 ‘니모’ 제작팀을 대상으로 어류의 이동방법, 습성, 생리, 색깔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서로 손을 들어 질문을 해댔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제작팀은 깊은 바다에 사는 아귀(anglerfish)의 생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바다는 어둡기 때문에 어류의 시각이 큰 도움이 못 된다. 아귀의 조그만 수컷은 커다란 암컷이 분비하는 물질인 페로몬의 냄새를 쫓다가 암컷에 들러붙어 기생한다. 이 내용은 실제 ‘니모’에 등장한다.

‘딥 임팩트’의 혜성 묘사를 조언했던 슈메이커 부부(아래)

▽‘아마겟돈’보다 ‘딥 임팩트’가 사실적=1월 중순에는 ‘2004AS1’이라는 소행성이 36시간 내에 북반구를 강타할 가능성이 25%로 추정됐다가 지구밖 1200만km에서 비켜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1998년에는 소행성이나 혜성의 지구 충돌을 소재로 한 SF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가 나란히 전 세계를 휩쓸었다.

‘딥 임팩트’는 혜성의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4년 목성과 충돌했던 ‘슈메이커-레비9’ 혜성을 발견한 슈메이커 부부를 비롯한 많은 혜성 전문가들이 조언했기 때문이다.

‘아마겟돈’ 역시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 연구원들이 조언했다. 하지만 엉성한 점들이 있다. 지름 900여km의 엄청난 크기를 가진 소행성이 불과 18일 전에야 발견된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 실제 지구 근처에 있는 이 정도 크기의 소행성은 ‘세레스’가 유일하고 세레스는 항상 추적되고 있다.

영화 ‘쥬라기공원’ 시리즈는 대중을 위한 ‘공룡학술지’라 할 만큼 최신의 공룡연구결과를 담아 왔다. 특히 2, 3편을 조언한 핵심과학자는 미국 몬태나주립대 고생물학자인 존 호너 교수다. 호너 교수는 1970년대 말 ‘마이아사우라’라는 초식공룡이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모습의 화석을 최초로 발견했다.

‘쥬라기공원’ 2, 3편을 조언한 핵심과학자인 미국 몬태나주립대 존 호너 교수(아래).

2편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새끼를 찾아 섬 전체를 뒤지고 3편에서 벨로시랩터가 알을 찾아 인간을 뒤쫓는 설정도 그의 조언에 영향을 받은 것. “2편을 기획하던 당시에는 실제 티라노사우루스 부모가 새끼 두 마리와 함께 있는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융남 박사가 말했다.

▽영화적 상상력의 왜곡=과학자의 조언을 받지만 영화의 전개나 설정 때문에 과학적 사실이 무시되기도 한다. ‘니모’에서 서머스 박사는 고래 입으로 들어갔던 물고기가 숨구멍으로 나오는 장면을 반대했다. 고래의 입과 숨구멍은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고기 부자의 극적인 상봉을 위해 그대로 갔다.

영화 ‘콘택트’에서 여주인공이 헤드폰으로 우주전파를 듣는 장면 역시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주전파는 가청주파수가 아니기 때문. 자문과학자이자 원작자인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이 반대했지만 이 장면은 외계신호에 귀 기울이는 과학자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삽입됐다.

영화 ‘체인 리액션’은 과학적인 현상이 과장된 경우다. 고려대 물리학과 정재승 연구교수는 “영화에서 음파에너지를 빛에너지로 바꾸어 막대한 에너지를 얻지만, 사실 이런 방식으로는 엄청난 음파에너지를 쓰더라도 나오는 에너지는 고작 커피 한잔을 데울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이 영화도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중시한 경우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