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2위 왕 난을 격파한 김경아. 동아일보 자료사진
3일 카타르 도하 세계탁구선수권대회(단체전) 한국-중국의 여자부 예선 첫 단식 마지막 5세트. 중국의 왕 난이 공에 회전을 잔뜩 먹인 톱스핀으로 공략하자 김경아(28·대한항공)는 라켓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며 백스핀으로 공을 받아 넘겼다. 10여차례의 랠리로 힘이 빠진 왕 난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 경기가 11-4로 끝나는 순간 김경아는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지난해 파리 세계선수권 전관왕(단식, 복식, 혼합복식)이자 세계랭킹 2위 왕 난을 무너뜨린 것.
이번 대회에서 김경아는 유독 빛났다. 왕 난 뿐 아니라 홍콩의 티에 야나(세계 6위) 라슈 페이(세계 12위) 등 강호들이 차례로 김경아에게 무너졌다. 세계 1위 장 이닝(중국)만이 김경아의 ‘방패’를 뚫었다.
8승1패로 세계 정상급 선수 대열에 낀 김경아는 국내에선 오랫동안 김무교 석은미 유지혜(은퇴)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가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것이 2002년 겨울. 세계선수권 주전도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선수들이 저 같은 수비형에 강해 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했죠. 간혹 국제대회에 나가도 주전 선수들의 연습 파트너 역할이었어요.”
지난해 말에는 소속팀인 현대백화점 여자탁구단이 해체돼 두 달 가까이 무적선수의 아픔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 올해 초 크로아티아오픈 단식을 재패하면서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크로아티아오픈 때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숙했던 것 같아요. 전에는 경기의 승패에 집착했고, 강한 상대 앞에서는 주눅 들었거든요. 집착을 놓아버리자 상대가 누구건 승부 자체를 즐기게 되더라구요.”
아테네 올림픽이 이제 5개월 앞. “이번 대회는 제가 서봤던 대회 중 가장 큰 대회였지만 제 스스로도 놀랄 만큼 긴장하지 않았어요. 체력을 더 보강하고 부족한 공격력만 보완한다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경아는 자신만만했다.
도하(카타르)=김성규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