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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전망대]분양원가 공개 논쟁의 허실

입력 | 2004-03-07 18:32:00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 도시개발공사의 마포구 상암동 아파트 원가 공개 이후 “건설회사가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네티즌을 비롯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분양 원가 공개’와 ‘분양가 규제’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건설업계와 경제 전문가들은 제품 원가 공개가 자유시장경제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맞서고 있다.

상품 가격이 원가가 아니라 수요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시장원리에 따르면 건설회사들의 논리가 맞다. 그러나 아파트는 택지조성부터 정부가 개입, 지원하는 일이 많고 분양권 전매금지 등의 정책들은 이미 주택의 공공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시민단체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려운 이론 논쟁이 치열하지만 역시 핵심은 아파트 분양가가 계속 높아진다는 현실일 것이다. 1998년 분양가가 자율화된 이후 서울의 아파트 분양가는 당시 평당 평균 500만원대에서 지난해에는 1000만원대로 뛰었다. 서울 강남의 평당 2000만원대 분양가는 도쿄나 뉴욕에서도 보기 힘든 높은 가격이다.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배경 역시 원가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분양가, 나아가 집값을 낮추는 데 있다고 본다.

그럼 원가를 공개하면 분양가, 나아가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전문가들 가운데는 이 두 가지가 다른 문제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즉 원가 공개로 분양가가 낮아진다는 보장이 없을뿐더러 설사 분양가가 낮아져도 아파트값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구조에서는 싼 값에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분양 시장이 과열되리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러면 이는 집값을 낮추는 게 아니라 당첨자와 건설사 중 누가 이익을 더 가져갈 것이냐 하는 힘겨루기가 되고 내 집 마련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민단체와 정부, 건설업계는 원가 공개에 집착하기보다 분양가 급등의 원인을 찾고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여러 대안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으는 것이 실리적인 태도인 것 같다.

예를 들어 공기업이 조성한 택지가 여러 차례 손 바뀜을 통해 가격이 폭등하고, 이것이 분양가에 전가되는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건설회사의 이익이나 비자금이 의심스럽다면 원가 공개가 아니라 공사 감리, 회계 감사, 세무 행정으로 보완해야 한다.

더구나 원가 공개 논란이 분양가 규제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98년 이후에도 분양가 규제를 하는 18평 이하 아파트는 공급이 크게 줄고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분양가 문제는 끝없는 원가 논쟁으로 이어지기보다 높은 집값→고임금→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