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한기자
“막중한 자리에 후보로 추천돼 기쁘기도 하지만 추천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아 주위를 불편하고 힘들게 해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7일 회장후보로 단독 추천된 황영기(黃永基)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내정자는 중책을 맡게 된 책임과 인선과정에서의 마음고생을 이렇게 말했다.
황 내정자는 이미 많은 준비를 해온 듯 앞으로의 경영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주주(株主)가치 제일주의’를 위해 외형 확장과 내부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게 그의 복안이다.
▽공격적 경영으로 조기 민영화 추진=황 내정자는 자신의 1차적 임무가 ‘우리금융의 성공적인 민영화’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민 혈세로 투입된 12조원의 공적자금을 가능한 한 빨리, 그리고 많이 회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리금융의 위상에 걸맞도록 증권 자산운용 보험 등 비(非)은행 부문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겠다”고 말해 앞으로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임을 내비쳤다.
인수합병자금의 조달에 대해선 “우리금융은 현재 차입금이 많은 데다 기업 인수자금 마련을 위한 유상 증자도 어려운 만큼 금융전문가들과 구체적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비은행 부문을 키우고 기존 은행 부문을 개혁한 뒤 우리금융지주회사 전체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겠다는 게 황 내정자의 전략인 셈이다.
우리금융지주의 내부 개혁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우리금융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 황 내정자는 “우리은행은 지주회사 규모의 80%를 차지해 지주회사와 은행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선 지주회사 회장이 은행장을 겸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을 비롯한 모든 자회사의 핵심 경영진이 황 내정자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우리금융 내부에서 ‘금융업무 통합화’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 전반에 큰 파장 예고=황 내정자의 등장은 우리금융 안팎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가장 큰 변화가 예고되는 부분은 제2금융권.
우리금융이 노리고 있는 매물은 증권 분야의 LG투자증권, 자산운용 분야의 한국투자증권 및 대한투자증권이다. 현재 우리금융 자회사인 우리증권이 LG투자증권을, 우리투신이 한투나 대투 가운데 한곳을 각각 합병하면 모두 업계의 1, 2위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덩치 큰 은행들이 대규모 M&A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 국민 하나은행도 이들 증권사를 인수하려 하고, 씨티그룹도 한미은행을 인수한 뒤 사업 다각화를 위해 증권 및 자산운용 부문 보강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긴장하고 있다. 국민은행 신기섭(申琪燮) 부행장은 “앞으로 국제 경쟁력이 없는 은행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강력한 우리은행과 경쟁하다 보면 국민은행도 내실을 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삼성맨’이 독립적인 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정부 소유의 국내 최대 금융그룹을 맡게 되면서 향후 금융계 인사 관행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출신의 민간 전문 경영인=황 내정자는 삼성그룹 핵심 경영인 출신이어서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느냐’는 금융계 일부의 시각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부인했다.
그는 “나에게 흠결이 있다면 업무와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지, 어디 출신인지는 흠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은행이 삼성그룹의 주채권은행이긴 하지만 삼성그룹은 우리은행에서 빌려간 돈보다 맡긴 돈이 15배 많은 가장 중요한 거래처이고 은행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에 대해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와 사전에 교감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에도 “‘이헌재 펀드’의 실무 역할을 했을 뿐”이라며 부인했다.
한편 황 내정자는 금융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국제금융을 전공하고 은행 보험 투신 증권 등을 두루 거친 데다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이 감탄할 정도의 고급 영어를 구사한다.
황 내정자는 삼성증권사장 시절 “한국의 증권사는 비슷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시내버스이지만 삼성증권만은 자가용 승용차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가 후보로 내정된 것이 확실시된 4일 우리금융 주가는 5%나 오르며 9000원을 회복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