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대북 인권결의안이 상정된다. 이 결의안의 핵심내용은 ‘탈북자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를 시정하라’ ‘외국인 납치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하라’는 것 등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결의안 표결에 기권키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인권을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코소보에 파병했다. 한국이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한 것도 인권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장병들은 사담 후세인 독재체제 하에서 무너져버린 이라크인들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이라크로 가는 것이다. 어떤 이념도, 명분도, 독재자의 궤변도 인류의 인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 21세기의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북한의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정권’으로 북한을 지목했다. 북한의 함남 요덕 등 6, 7개 정치범수용소에는 20만명이 수용돼 있다. 일본 후지TV는 벌레가 잔뜩 붙은 배춧잎을 뜯어먹는 정치범들의 모습을 방영해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들은 매일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질병으로 숨지거나 처형된다고 한다. 어느 탈북과학자는 정치범들이 독가스 등 생체실험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북한에선 이미 200만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사망했고, 지금까지 30여만명이 식량을 찾아 북한을 탈출했다. 어린아이들은 영양실조로 성장이 멈추었고, 후진국적 전염병이 돌아도 항생제가 없어 손도 못쓰고 죽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마취제가 없어 생살을 가르며 수술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들린다.
문제는 북한 김정일 정권이 주민들의 이러한 참상은 외면한 채 오직 체제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 이후 금수산의 김일성기념궁전을 치장하는 데에만 수억달러를 지출했다. 병력을 1만명 늘리고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수십억달러를 쓰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은 물자는 권력층이 착취하고 식량은 군량미로, 현금은 군사비로 전용되고 있다. 외신들은 이러한 북한체제의 실상을 ‘방전되어버린 배터리’에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북한인권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정정당당하게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북한의 인권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북한 주민들도 헌법상 엄연한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
대북지원을 인권문제와 연계시켜야 한다. 북한의 눈치나 보는 저자세 화해협력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표결에 정정당당하게 참여해 찬성표를 던지는 것만이 북한 인권에도, 남북관계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다.
지난해 대북 인권결의안 채택 표결에 불참한 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기권할 경우 전 세계로부터 밀려들 분노와 조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이도 남북화해가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상훈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