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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권순활/중국의 변방으로 추락하는가

입력 | 2004-03-07 19:19:00


고도성장 가도(街道)를 질주해 온 중국이 숨 고르기에 나섰다.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약 7%로 하향조정했다. 경기과열을 미리 막아 연착륙시키기 위한 속도조절이라고 한다. 지난해 중국은 9.1%나 성장했다.

한국사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오랫동안 중국은 선진문명을 대표했다. 동양식 사대질서의 특수성을 감안한다 해도 제국과 변방의 상하관계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황제 소리 한번 못해 본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면서 자식들에게 곡(哭)을 못하게 한 조선 중기 시인 백호 임제(白湖 林悌)의 유언은 변방의 지식인을 짓눌렀던 고뇌의 깊이를 읽게 한다.

이런 역사를 생각하면 최근 40여년간 한국이 이룩한 경제적 성취는 의미가 크다. 비록 한반도의 남쪽 절반에만 해당되지만 평균적인 삶의 질은 중국을 압도했다. 중국에 대한 콤플렉스도 떨쳐낼 수 있었다.

명암을 가른 핵심 변수는 체제와 국가전략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중국 본토가 공산주의에 편입된 것은 자본주의를 택한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문화혁명으로 대표되는 이념 과잉과 ‘내부의 적 찾기’는 중국을 더 후퇴시켰다. 반면 한국은 논란은 있었지만 기업과 정부, 국민이 ‘5000년 가난에서 벗어나 보자’는 목표 아래 매진해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상대적 우위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 같다. 금융 등 잠재적 위험 요인은 있지만 시장경제에 눈뜬 중국의 도약 속도는 세계를 놀라게 한다. 이념의 억압 아래에서 억눌렸던 중국인 특유의 상혼(商魂)이 제도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만들어 내는 변화는 이 시대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다. 중국에 유학 중인 외국학생의 절반가량이 한국인이란 통계와 중국기업의 잇따른 한국기업 인수도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경제가 용틀임을 하고 글로벌 무한경쟁이 불붙은 때에 불행히 한국은 세계사적 흐름을 역류(逆流)했다. 실패한 사회주의의 색채가 묻어 있는 하향 평등주의와 반(反)기업 정서를 진보적 시각으로 착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이런 이념은 권력을 견제하는 대항논리로 머물 때는 소금의 역할이라도 한다. 하지만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면 모두 불행해진다.

근면과 성실, 질박(質朴)과 인내 대신 빛바랜 이념에 의존한 로또복권식 한탕주의를 꿈꾸고 기존의 성취를 발전적으로 뛰어넘기보다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풍토는 땀 흘려 힘든 길을 걸으려는 의지를 무디게 한다. 이념과 가치관의 혼돈, 정체성의 위기는 우리 경제를 갉아먹었다. 작년 성장률은 당초 전망치를 2%포인트 이상 밑돌면서 16조원 이상의 국부(國富)를 날려 보냈다. 벼락출세한 일부 실세(實勢) 그룹의 독선과 빠른 타락이 불러온 유무형의 코스트는 또 얼마나 될까.

나라가 힘없고 가난하면 백성이 고생한다. 한번이라도 외국에 나가 보면 튼튼한 경제와 안보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여권의 국명(國名)에 따라 사람값과 대접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한국의 재도약은 어렵다”고 걱정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사실상의 주종관계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활기를 넘어 과열을 걱정하는 중국. 무기력과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한국. 정말 한반도는 다시 중국의 변방으로 추락하는가.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