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김주혁(33).
제목만 무려 26자. 12일 개봉예정인 이 작품의 타이틀은 추억의 만화영화 ‘짱가’의 주제가에서 따 왔다. 정감은 있지만 긴 제목에 숨이 찬다. ‘영화처럼’ ‘홍반장’ ‘내 사랑 홍반장’으로 몇 차례 바뀐 끝에 정해진 제목이다.
홍반장과 김주혁,실제 둘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극중 홍반장은 한국 영화에서는 드문 캐릭터이기에 더욱 빛난다. 로맨틱 코미디의 웃기는 남자 주인공들과 사뭇 다르다. 군대를 갔다 온 뒤 고향에 정착한 홍두식(김주혁). 특별한 직업은 없지만 못하는 일도 없다. 편의점 점원, 자장면 배달, 라이브 카페의 ‘땜방’ 가수, 수준급의 골프와 바둑 실력…. 사랑하되 강요하지 않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뻗치는 새로운 인간형이다. 영화 포스터에서도 ‘홍반장’은 맥가이버처럼 온갖 공구들을 차고 있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주인공 김주혁. 영화 속의 ‘홍반장’은 ‘맥가이버’처럼 다양한 공구들을 차고다니며 만능해결사 노릇을 하지만 배우 김주혁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기교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사진제공 제니스필름
○ 점원… 가수… 배달원… 직업을 묻지 마세요
김주혁은 어떤가? 꽃미남 계열도 아니고 소문난 연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조역으로 빠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홍반장’은 2001년 ‘세이 예스’ 이후 ‘YMCA 야구단’ ‘싱글즈’에 이은 김주혁의 네 번째 출연작.
이 영화에서 홍반장은 김주혁을, 김주혁은 홍반장을 살렸다. 영화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여의사 혜진(엄정화)과 홍반장의 티격태격 사랑 만들기를 담았다.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영화는 캐릭터의 힘으로 여유 있게 관객을 사로잡는다.
사실 이 작품은 김주혁을 위한 영화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와 배우가 잘 어울린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데 겉으로는 생뚱한 모습이 두식과 닮은 편이죠. 시나리오가 좋아서 억지로 웃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췄어요.”
김주혁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꼽은 것도 홍반장처럼 엉뚱하다.
“장점요? 굳이 꼽자면 차갑고 쿨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요. ‘싸가지’ 없어 보여 접근하기 쉽지 않다고도 해요.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올 때는 실제 학생이냐는 소리도 들었죠. ‘배우 같지 않은 얼굴’, 그게 칭찬인지 아닌지…(웃음)”
그 얼굴은 알려진 대로 탤런트 김무생에게서 물려받았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는 아버지의 그늘을 피해 연기활동을 펼쳐왔다. 인터뷰 중 아버지의 이름이라도 나올라치면 대충 얼버무린다.
“‘누구의 아들’이 아니라 ‘배우 김주혁’으로 승부를 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약속입니다. 아버지는 내 연기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죠. 가끔 들려주시는 얘기도 연기가 아닌, 사람 사는 얘기예요. 참, 아버지 영화도 잘 되어야 하는데….”
○ ‘여의사’ 엄정화와 티격태격 사랑만들기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출연한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19일 개봉된다.
엄정화와는 ‘싱글즈’에 이어 다시 만났지만 그때는 같이 출연한 신이 없었다.
“(정화) 누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배웁니다. 여우같은 면도 있고, 먼저 마음을 열어 상대방의 마음도 열 줄 아는 배우죠. 라스트의 키스 신에서는 ‘주혁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니’라며 묻기도 하더라고요.”
그는 좋아하는 배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숀 펜, 해리슨 포드, 빌 머레이, 송강호를 들었다.
“난 어떤 배우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이 불쾌하지 않아요. 내 꿈의 하나가 언젠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겁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