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와 공동경비구역은 지난 50년간의 남북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분단과 남북의 충돌,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과 교류가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통일을 향한 미래도 결국 이곳에서 출발해 이 장소를 없애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44·정치학)가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대학생 안주영(27·성균관대 정치학과) 양승섭(25·홍익대 국문학과) 조철희씨(25·한양대 국문학과)를 만나 비무장지대와 공동경비구역을 중심으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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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픔
▽안주영=유엔군 관리하의 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우리가 주체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남북관계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과거에 스스로 종전(終戰)을 할 수 없었으며 분단 50년이 흐른 지금도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동시에 드러내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남의 장소이자 아픔이 교차하는 지점이죠.
▽김일영 교수=휴전협정(1953년 7월 27일 조인)에는 중국군과 북한군, 유엔군 대표가 서명을 했지요. 북진을 원했던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지금도 ‘남한은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직접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할 때의 근거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까지는 유엔군, 북방한계선까지는 중국군과 북한군이 담당하게 돼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한국군이 지키고 있지만 만약 육로로 통행을 하게 된다면 유엔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죠. 한반도 안의 우리 땅임에도 주체적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공간임이 분명합니다.
▽양승섭=군사분계선을 정하는 협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이것도 가슴 아픈 희생입니다.
▽김 교수=1951년 초 휴전을 합의해놓고도 2년 반 동안 회담에서 서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쓸데없는 전투, 부질없는 희생을 계속했던 거죠.
▽조철희=비무장지대가 이름 그대로라면 ‘평화의 장소’인데 현실적으로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돼 안타깝습니다.
▽김 교수=실제로는 중무장지대지요. 처음에는 개인화기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1960년대부터 자동소총, 박격포, 고사포 등을 북한이 북방한계선 부근에 배치하기 시작하면서 북방한계선 자체가 조금씩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남방한계선도 이에 따라 올라갔죠. 서부전선도 처음에는 미군이 지켰고 철책이 아니라 목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넘나들기가 수월했지요. 그러던 것이 1968년 북한의 124군부대가 침투하면서 경계책임이 한국군으로 넘어오고 경계선도 철책으로 바뀌었습니다.
# 만남
김일영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서울 용산구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대학생 조철희 양승섭 안주영씨(왼쪽부터)와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중심으로 분단과 통일 문제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박영대기자
▽조=제가 철책을 지키는 초소에서 근무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대포소리가 창문을 뒤흔들 정도로 심하게 울려 전쟁 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는데,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됐어요. 그러다 철책을 넘나드는 고라니 오소리를 보면서 우리도 그들처럼 마음을 비우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남이 시작돼야겠죠.
▽김 교수=그런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한 영화가 ‘공동경비구역 JSA’겠죠.
▽양=북한 사람을 마주친다면 실제로 적대감을 갖지 않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와 같은 감정적 교류는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 교수=언어가 통한다는 사실은 만남을 위한 최대 강점일 겁니다. 군인 대 군인의 접촉뿐 아니라 정부와 정부, 기업과 정부, 개인간 만남 등에 든든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안=지금까지는 만남이 이벤트적이었던 것 같아요. 분단의 아픔까지도 정치적 이벤트로 바뀐 측면이 있어요. 앞으로는 지속적 교류가 가능해야 합니다.
▽김 교수=비무장지대의 크고 작은 교전사태는 수없이 많았어요. 만남의 종류도 군사정전위 같은 공식적 정부간 만남, 고(故) 정주영 회장의 소떼몰이 방북 등의 이벤트, 개인들의 규칙을 무시한 만남, 무력 충돌에 따른 접촉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습니다.
# 미래
▽양=자발적으로 만들지도 않았고 주체적으로 관리하지도 않는 공간이라는 점이 미래 설계에도 장애가 될 것 같아요. 또 군사적 이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문화적 장소로 변모하기도 어렵겠죠?
▽김 교수=우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정전협정이 계속되는 한 비무장지대나 공동경비구역이나 그 관리는 우리에게 넘어올 수 없으니까요. 정전체제가 해소돼야 남북관계가 동북아 지역의 문제에서 우리 자신의 문제로 올 수 있습니다.
▽안=교류가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선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김 교수=북한 핵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요. 핵문제 때문에 국제정세와 연동되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는 거죠.
▽조=교류가 진실해지기 위해선 국민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친구들 중에는 통일에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합니다. ‘통일비용은 어떻게 해?’ ‘통일되면 취업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경계심리가 통일에 장애가 될 수 있어요.
▽김 교수=통일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불안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북한 모두 통일을 구호처럼 내세워 교육을 했죠. 이런 통일교육이 아닌 실질적 공존 교육이 필요합니다. 긍정적 공존을 계속 추구하다보면 진정한 통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허구의 구호를 집어치우고 통일로 가는 공존을 어떻게 실현할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정리=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한국분단 문제를 다룬 책들▼
●비무장지대를 찾아서 DMZ(이해용·눈빛)=비무장지대와 인근 민통선 지역이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떠오르면서 직면하게 된 문제를 관찰한 기록.
●판문점 리포트(장승재·삶과꿈)=판문점에 관한 개괄서. 판문점의 역사와 배경, 판문점 남북공동개발과 관련한 활성화 방안, 판문점 방문규정과 신청절차 등을 정리.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김원일·문이당)=6·25전쟁의 상처로 아직도 괴로움을 겪는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며 화해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소설.
●소라단 가는 길(윤흥길·창비)=환갑을 앞둔 친구들이 전쟁의 체험과 인상 깊은 사건을 돌아가며 얘기하는 소설.
●역사의 멍 DMZ 어떻게 풀 것인가(박정남·푸른물결)=비무장지대가 형성된 역사적 배경과 음모, 현재의 자연생태계 등을 조망.
●남북한 통일방안의 전개와 수렴(심지연·돌베개)=남북한 통일방안의 전개와 수렴 과정을 자주화와 국제화의 관점에서 분석, 정리.
●남북대화 백서(노중선·한울)=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남북대화가 전개돼 온 과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한 연구서.
●주한미군(김일영 조성렬·한울)=탈냉전과 남북화해 분위기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평화체제와 통일을 염두에 둔 한미관계의 변화상 등을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