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덩후이(李登輝·81) 전 총통 겸 국민당 주석과 쉬신량(許信良·63) 전 민진당 주석. 이들은 몸담았던 당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으며 이번 총통선거 정국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리덩후이…천수이볜의 수호천사=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선거 반년 전인 지난해 9월부터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에게 줄곧 밀려왔다. 그러다 최근 오차범위 내에서나마 처음으로 야당 후보를 앞질렀다.
민진당이 ‘2·28사건’ 57주년을 맞아 남북 500km를 잇는 인간띠 행사에 200여만명의 인원을 동원하면서 역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 이 행사는 1947년 중국 대륙에서 패퇴한 국민당 정권이 대만 원주민 2만여명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학살한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야당인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을 함께 겨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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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의 숨은 주역이 바로 리 전 총통이다. 그는 고전하는 천 총통에게 2·28사건을 맞아 대규모 군중 동원행사를 치르도록 조언했다. 천 총통이 주창한 ‘정밍(正名·국호를 대만으로 변경)-궁터우(公投·국민투표)-즈셴(制憲)’ 전략도 그의 훈수에 따른 것이다. 그는 막후 선거고문뿐만 아니라 민진당을 지원하는 각종 시위까지 직접 주도하고 있다.
‘배신자 리덩후이를 죽여 만인의 한을 씻자.’ 2000년 총통선거에서 국민당이 사상 처음 야당에 패했을 때 분노한 국민당원들은 리 전 총통을 공격했다.
당시 국민당 내에서 인기가 높았던 쑹추위(宋楚瑜) 국민당 비서장(현 친민당 주석)을 제치고 롄잔 부총통을 후보로 지명해 분당(分黨) 사태를 빚어 국민당 표를 분산시킨 데다 선거전 중반 암암리에 민진당의 천 후보를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대만대 농대 교수였던 그는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에게 발탁돼 타이베이(臺北) 시장과 부총통을 거쳐 총통직까지 계승했던 국민당의 적자였다. 그러나 대만 출신으로 학생 시절 2·28사건의 참상을 목격했던 그에게는 뿌리 깊은 반(反)국민당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쉬신량… 롄잔의 공격수=96명의 민진당 원로들은 1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만을 믿자, 천수이볜을 믿지 말자’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행사 주도자는 쉬 전 민진당 주석. 그는 “민진당은 건당(建黨) 초기의 고귀한 이상과 민주 정신을 잃어버렸다”면서 “천수이볜이 당 주석이 된 뒤 당내 비판의 목소리는 실종됐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민진당을 떠났다”고 포문을 열었다. 또 “천수이볜은 대만의 장래보다는 집권욕에만 사로잡혀 있으며 총통이 된 뒤 부패의 함정에 빠져 들었다”며 신랄하게 공격했다.
그는 5일 야당 선거본부에 연사로 나와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으려면 국민당의 선거전략이 더욱 치밀해야 한다”면서 “천수이볜의 재선은 대만의 앞날에 너무 큰 위험을 안겨주는 만큼 반드시 연임을 저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진당 최대 파벌의 영수였던 그는 특히 양안 관계에 있어서 온건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중국 경제 발전→민주화→대만 침공 방지’라는 소신을 갖고 있어 정경 분리를 통한 양안관계 증진을 주장한다.
대만 출신으로 국립 정치대를 졸업한 뒤 장외투쟁과 미국 망명 등 30여년간 반체제 운동을 벌여왔으며 천 총통의 독립 노선에 대해 현실을 냉철히 봐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대만-본토출신 뿌리깊은 갈등 선거 큰 변수로▼
야당 부총통 후보인 쑹추위 친민당 주석은 최근 선거유세 도중 눈물을 흘렸다. “중국인은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어느 유권자의 말을 듣고 서운한 감정이 복받쳤기 때문이다.
대만 총통선거의 주요 변수 중 하나는 지역감정이다. 크게 보면 본성인(本省人·대만 출신)과 외성인(外省人·본토 출신)의 갈등이다. 반세기에 걸친 국민당 정권하에서 각종 차별과 소외를 받아온 대만인들은 본토 출신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
2000년 선거 때 중국이 “대만 독립파가 당선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위협하자 유권자들이 천수이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롄잔-쑹추위 야당 정-부총통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도 지역감정이다. 롄 국민당 주석은 중국에서 태어나 열 살 때 대만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대만 출신이어서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부모와 함께 일곱 살 때 대만으로 건너온 쑹 부총통 후보는 지역감정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고 있다.
롄 주석은 선거유세 때 의식적으로 대만 방언인 민난화(민南話)를 구사한다. 쑹 주석은 자신이 대만성장 재직시절 ‘친(親)본성인 정책’을 적극 편 것을 내세우며 자신은 이미 대만인임을 강조한다.
반면 대만 출신인 천 총통은 유세 때마다 “대만은 대만인이 이끌어야 한다”면서 지역감정에 노골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2300만명의 대만 인구 중 본토 출신은 17%, 소수민족이 10%, 순수 대만인이 83%를 차지한다. 본토 출신이 많은 대만 북부는 국민당 지지세력이 강하고, 순수 대만인이 절대 다수인 남부는 민진당이 강세다. 중부는 두 세력이 혼재돼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