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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세러피]‘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입력 | 2004-03-11 17:21:00

동아일보 자료사진


흥행 기록을 연일 갱신중인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장동건)를 보며, 나는 몇 달 전 TV에서 야구선수 이승엽이 일본 진출을 발표하며 눈물짓던 장면을 떠올렸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민의’ 타자가 되었다가 갑자기 온 ‘국민’의 이름으로 비난을 받았던 그…. 사실 그의 고통은 능력 있는 프로선수가 진로에 관한 이해득실에서 최적점을 찾기 어려웠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야 했다. 그래서 그가 사람들 앞에서 훌쩍이며 우는 모습이 안쓰러웠고 누구에겐지 모르지만 좀 화도 났던 기억이 난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 총알이 빗발치는 적진을 반복해 뚫고 나간다. 그런 장면들은 영화의 현실감 여부를 떠나, 동생 진석(원빈)을 보호하고 구원하려는 진태의 의지가 물리적 법칙을 초월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도 힘든 전쟁터에서 타인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진태의 환상이다. 그런데도 진태는 되레 진석까지 자신의 환상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자신처럼 진석 역시 형의 무공 덕택에 집에 돌아가고, 대학에 들어가고,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원한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진태의 마음 속에서 동생은 곧 그 자신이며, 그의 가족 전체이기도 하다. 둘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이다. 그들은 서로 그물같이 얽힌 가족의 구성원들이며 서로의 정체성은 조금씩 뒤섞여 있다. 그런 가족이 갖는 문제는 각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가족 전체의 것과 구별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가족 구성원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원인이 진태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대안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안쓰럽다. 또한 그것은 진태 가족만의 문제는 아니다. 멀지 않은 과거까지, 우리의 아버지들은 일찍 죽거나 집을 나가거나 무관심했고, 남은 어머니가 가진 자원은 취약했으며, 사회는 너무도 불안정하고 위험했다. 그 안에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서로 그물처럼 스크럼을 짜고 가족 전체의 단위로 정체성을 형성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국민’은 그것이 확장된 큰 가족이었고, 프로 스포츠 선수를 스포츠로 국위 선양하던 시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 잔재이다. 영화 속의 진태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큰 형”이며, 이승엽은 야구를 통해 자아를 실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가족(국민)의 자랑인 홈런왕”인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가족이라는 뭉쳐진 단위에서 개인으로 분화해 나와도 삶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그런데도 ‘태극기 휘날리며’를 10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이 영화 자체가 또 ‘국민의 영화’처럼 되어가는 것을 본다. 나는 진태와 진석 형제가 가족의 안위와 미래를 떠안듯 이 영화가 한국 영화의 앞날에 영광을 가져와야 하는 딜레마를 안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결국 어디선가 깃발을 휘날리게 될지 모르지만, 그 깃발이 진태의 붉은 깃발처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될까 좀 걱정이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 경상대병원 hjyoomd@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