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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523회…셔플 XⅥ 탑 또는 신의 집 (2)

입력 | 2004-03-11 18:51:00


나는 열한 명 형제 중의 막내입니다. 내가 태어난 날 아침, 나를 먼저 안아보겠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나는 여덟 오빠의 보호와 귀여움을 받으며 애지중지 자랐습니다.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우리 집에 지금은 아버지와 어머니 단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오빠들이 연행될 때 쓰러진 이후 몸져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간병을 하고 있지만,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습니다. 김원봉의 가족은 인부나 똥 푸는 사람으로도 써주지 않습니다. 친척이나 친구들이 우리 집에 드나들다가 밀고당하면 체포되니, 정기적으로 먹을거리를 대줄 수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걱정입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매일 아침 봅니다. 거적때기로 칸만 가른 임시 화장실이 밖에 있습니다. 물론 문 앞에 권총을 든 경관이 지키고 있지만 아침 공기도 마실 수 있고 어머니 얼굴도 볼 수 있어서 나는 아침에 화장실 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나카노 공장을 빙 두르고 있는 담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공장에 수용돼 있는 우리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와 언니, 남동생과 여동생, 아들과 딸, 할아버지와 할머니, 남편과 아내와 친구들이 늘 담벼락 위로 고개를 들이밀고 우리가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얼굴을 보면, 손도 흔들지 않고 웃지도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입니다.

어머니는 지난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보러 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오겠죠…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빠들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1년 3개월…더 정확하게는 455일입니다. 광복절 다음다음 날 연행되었으니까, 8월 17일입니다.

그때 나는 큰오빠가 준 연필로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큰오빠는 나보다 나이가 서른 살이나 많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13년 전에 만주로 떠나 밀양에는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아, 처음 얼굴을 본 것이 1946년 2월 26일의 일입니다.

그 몇 달 전부터 김원봉 장군이 조선민족혁명당을 이끌고 개선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밀양 사람들 모두 얼굴만 마주하면 김원봉 장군 만세를 외쳤습니다. 밀양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들을 환영했습니다…그때는…한 명도 빠짐없이….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