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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금융슈퍼마켓’ 대변신…각종 금융상품 수십종 갖춰

입력 | 2004-03-11 19:08:00


주부 김모씨(45)는 최근 만기가 돌아온 적금 3억원의 투자 상담을 위해 우리은행 본점 영업부를 찾았다. 김씨는 곧바로 VIP룸으로 안내됐다. 영업부 프레스티지 로열클럽의 이인호(李寅浩) 차장은 무려 50가지가 넘는 상품 리스트를 펼쳐보였다.

미국 메릴린치투신운용의 ‘글로벌 자산배분 펀드’, 미래에셋투신운용의 ‘롱 숏 주식형 펀드’, 방카쉬랑스 상품인 ‘AIG 연금보험’ 등등 생소한 상품들이 소개됐다.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는 본점 1층 영업부 한편에서는 우리증권 직원들이 삼성전자 주가 그래프를 보여주며 김씨를 ‘유혹’했다. SK텔레콤 직원도 휴대전화를 새로 장만해 모바일뱅킹인 ‘M뱅크’를 이용하라고 권유했다.

은행이 예금과 대출은 물론 각종 금융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금융슈퍼마켓’으로 바뀌고 있다.

▽펀드나 보험 다 살 수 있습니다=고객에게 도움이 되고 돈이 되면 뭐든지 판다는 것이 최근 은행들의 영업 전략이다. 투자신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19개 은행의 펀드 판매시장 점유율은 17.1%로 전년 말 13%보다 4.1%포인트 올랐다. 은행의 방카쉬랑스 계약 건수도 지난해 9월 말 6만1460건에서 올해 1월 말 21만2762건으로 늘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로또복권을 팔아 920억원을 벌었고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 금 투자 상품인 ‘신한골드리슈’를 선보여 금 무게로 1t, 예금 규모로 160억원을 팔았다.

상품 판매 수입이 늘면서 국내 일반은행의 총이익에서 수수료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7.12%, 2002년 9%에서 지난해 11.51%로 늘었다.

‘슈퍼마켓’ 영업을 강화하는 내부 정비도 한창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상품 판매 및 개발을 전담하는 ‘PB-에셋매니지먼트 그룹’을 신설했다. 신한과 한미은행이 올해부터 프라이빗뱅킹(PB·부유층 고객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 사업부를 독립시켰고 하나은행 등 대부분 은행이 PB사업 인력과 조직을 늘리고 있다.

이준재(李峻宰) 동원증원 애널리스트는 “최근 국민 하나은행과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증권 및 투신사 인수에 열을 올리는 것도 상품을 다양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과 고객 모두 만족=한국은행 윤만하(尹萬夏) 분석총괄팀장은 “저금리로 이자수입이 줄어든 은행들이 대출보다 위험이 적고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금융상품 판매 수입을 늘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영업 장벽이 무너지고 모든 금융회사들이 부유층 고객의 자산관리 시장 쟁탈전에 뛰어든 것도 슈퍼마켓화의 원인 중 하나다.

국민은행 정연근(鄭淵根) 부행장은 “자산관리 영업 경쟁에서 이기려면 다양한 상품군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고객들의 반응은 일단 좋은 편이다. 김씨는 “한곳에서 모든 종류의 상품에 대해 설명을 충분히 들을 수 있어 편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재룡(禹在龍)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같은 상품을 팔더라도 누가 파는지에 따라 다르다”며 “판매 직원이 상품의 특성과 위험 등을 잘 알고 있는지, 고객의 이익보다 은행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