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한 그루 들꽃에서 천국을 보고자, 네 손바닥 안에 무한(無限)을, 시간 안에 영원(永遠)을 움켜잡아라.”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의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물가에서 흔하디흔한 모래로 집짓기 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다. 서울 주변 한강의 드넓던 백사장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대신 강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도심에 고층 건물들이 솟아올라 서울의 경관이 일신됐다. 그것이 잘된 일인가, 잘못된 일인가? 어떤 모래성(城) 쌓기에 가치를 두느냐의 시각차에 따라 경제성장의 득실 계산이 다르게 나올 것이다.
▼정권 바뀔때마다 자기 정당화 ▼
육지의 자연 모래가 줄어드니 차츰 건축자재로 바닷모래를 사용하는 일이 늘게 됐다. 그래서 군사 권위주의시대 말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 유행하던 말이 생각난다. ‘육사’가 ‘해사’를 사용해 아파트 ‘공사’를 벌이니 부실공사가 걱정된다는 이야기 속에 3군 사관학교를 모두 들먹였다. 그러나 근래 신도시 아파트들이 상승세를 타고 있어 바닷모래에 함유된 염분 때문에 철근 부식을 우려했던 당초의 걱정이 기우였던가 싶다.
자원은 유한하다. 경제학 원론에서 한때 공짜라고 가르쳤던 사례들 가운데 식수와 마찬가지로 모래 또한 제값 받는 상품으로 대접 받은 지 오래다. m³당 7000원 하던 바닷모래가 3월 들어서는 1만3000원을 호가하고, 그 값 주고도 공급 물량이 태부족이란다. 환경단체의 이의 제기에 밀려 지방자치단체들이 바닷모래 채취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서둘러 수도권에 골재를 공급해 온 인천 옹진군, 충남 태안군에 다시 허가하도록 조치했으나 당분간 모래 부족 사태는 계속될 전망이다.
경제가 어렵다. 회복되는 세계 경제, 특히 고속 성장하는 중국 경제의 강력한 흡인력에 이끌려 철근 등 다수의 원자재 국제가격이 급등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모래 부족 문제는 순전히 국내에서 비롯됐다. 정부의 표류가 한동안 진행돼 왔다. 지난주 폭설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정부가 한눈팔고 있었고, 관계부처간에 협의가 없었다. 해당 지역의 바닷모래 채취 금지가 국민경제에 끼칠 영향을 예상하고 조정하는 거시적 기능이 고장 나 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탑 세우기’보다 ‘탑 허물기’에 노력을 경주해 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바로 세우기’ 등 과거 부정, 현재 정당화 작업이 개혁의 깃발을 휘날리며 추진되었다. 탑이 몇 층 올라가는가 하면 다시 허물어 맨 아래 기단부터 시작하는 것이 광복 후 나라꼴이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처리 문제로 세상이 몹시 소란하다. 대통령의 계속된 법률 위반 발언과 선관위 경고가 문제의 단초가 되었고, 그 위법성이 경미하고 모호하다는 것이 답변이었다. 국민은 헷갈리고 시중 여론은 탄핵과 사과 문제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나 죽여 나라살리는’ 지도력 절실 ▼
어제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측근과 친인척 비리문제, 대선자금 10분의 1 문제 등에 대해 국민에게 “부끄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다”고 했으나 국회에 상정된 탄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먼저 야당이 철회해 주면 “만사가 잘될 것”이라 했다. 자신의 재신임 문제를 언급하면서 총선 결과와 연계해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겠다고 했다. 기자회견 후 여론의 향배는 오히려 찬반이 첨예화된 느낌이다. 국회 의사진행이 걱정된다. 여야 모두 총선을 앞두고 기세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동안 민생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근대 중국을 세운 쑨원(孫文·1866∼1925)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에게는 가족 가문의 결속만 있고 거시적 민족정신이 없다…. 모래 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지역, 학연, 빈부 등으로 갈래갈래 분열돼 모래 더미가 되고 있다. 나를 죽여 나라를 살리는 지도력이 이처럼 절실히 요청되는 때가 일찍이 없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
김병주 객원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