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 국회의장은 11일 밤 노기(怒氣)를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후 4시25분경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으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저지에 가로막혀 1시간 반 동안 국무위원 대기석에 앉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치 상황을 참다 못한 박 의장은 오후 5시53분경 의장석 아래 의원 발언대로 올라가 “이런 식으로는 대의정치를 하기 힘들다. (더 이상 막으면) 의장으로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있다”며 본회의 개의 무산 및 12일 본회의 개최를 선언했다. 경호권 발동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박 의장은 11일 오전까지만 해도 측근들에게 “질서 유지를 위해 국회 직원들을 동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등 경호권 발동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상황을 봐야지 미리 (경호권 발동을) 한다 안한다 말할 수 없다”며 발동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고, 열린우리당이 실력 저지에 나선 뒤에는 급기야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그렇지만 평소 박 의장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경호권까지는 발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박 의장은 이날 의장실을 찾아온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경호권을 발동해서 국회의원을 끌어낼 순 없지 않느냐”며 “정치적 효과도 거의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원만한 협의를 중시해 온 박 의장이 상당한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한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경호권은 지금까지 모두 5차례 발동됐다. 1958년 8월 20일 4대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변칙 처리 중 당시 김상돈 안균섭 의원이 회의장에서 소란을 피우자 한희석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해 퇴장을 명령한 것이 첫 번째였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12대 국회 때인 1986년 10월 16일 ‘국시(國是) 발언’과 관련, 유성환(兪成煥)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해 발동했던 것이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박 의장이 정치 인생의 대미(大尾)를 장식할 탄핵 정국을 풀기 위해 어떤 묘수(妙手)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