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군 vs 청군/이장훈 지음/394쪽 1만3000원 삼인
도광양회(韜光養晦). ‘빛(光)을 감추고 어둠(晦)을 기른다’는 한자 숙어로 현재 중국이 표방하는 대외정책의 슬로건이다. 이는 후진타오 주석이 국가 목표로 천명한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의 ‘샤오캉(小康)사회’를 건설할 때까지 주변국과 정치 군사적 충돌이나 긴장관계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다. 언뜻 평화 애호적 표현 같지만 세계 제패를 도모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칼을 갈겠다는 야심이 숨겨진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패권국가로 언젠가 그 칼을 받게 될지 모를 미국이 이를 간과할 리 없다. 클린턴 행정부 때 ‘전략적 동반자’로 규정됐던 중국의 지위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전략적 경쟁자’로 바뀌었다. 윈윈(win-win)의 대상에서 제로섬(zero-sum)의 상대로 바뀐 것이다. 미국 해리스 조사연구소가 1995∼2002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중국을 비우호적 국가로 꼽았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네오콘―팍스아메리카나의 전사들’을 썼던 저자(국제문제전문가)는 각종 언론 보도와 보고서 등을 취합하고 재구성해 미중간 물밑 대결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1999년 이동식 다탄두 대륙간탄도탄 둥펑(東風)31의 개발, 2003년 주력전투기 젠(殲)-10의 실전 배치, 2004년 유인우주선 선저우5호 발사 등은 중국이 등 뒤에서 갈고 있는 칼날이다. 지난 10년간 연 10%대의 고속 경제성장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상하이엑스포 개최 등은 그 검광(劍光)을 감추는 어둠이다. 어둠 속에 벼려진 칼날은 아시아지역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태국인들의 국가선호도 조사에서는 중국(76%)이 미국(9%)을 압도했다. 한국에서도 최대 수출시장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것과 더불어 반미 흐름이 분출되고 있다.
미국이 이를 좌시할 리 없다. 대서양지역의 영국에서처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항공모함국가’로 일본을 낙점하고 그 재무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 중국의 라이벌인 인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금지 품목이었던 첨단무기의 수출을 허용하고 합동훈련까지 펼치고 있다. 일본 호주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 전통적 맹방과 인도를 함께 묶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구상안도 흘러나온다. 주한미군의 후방 철수와 기동군 재편 역시 북한보다는 중국을 겨냥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책의 제목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군사훈련을 할 때 자국군을 홍군(紅軍·red team), 가상 적군을 청군(靑軍·blue team)으로 나누는 데서 따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워싱턴 내부 대(對)중국 강경파 비밀모임인 ‘블루팀(청팀)’ 역시 이런 색깔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
저자가 조명한 블루팀은 신 황화론(黃禍論)을 주창하는 안보전문가들의 비밀 서클로 의회와 행정부, 정보기관, 학계, 언론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표 참조). 블루팀은 네오콘(신보수주의)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이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친중국파로 분류되는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모리아티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 등과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펼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의 접점은 결국 한반도로 귀착된다. 한반도는 여진-몽골, 명-일본, 명-청, 청-일, 일-러 등 주변 강대국의 세력이 재편될 때마다 전화(戰禍)에 시달렸다. 승천을 꿈꾸는 붉은 용과 이미 하늘을 지배하는 푸른 용의 싸움에서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지 않도록 막을 방도는 무엇일까. 저자는 ‘용미(用美)’와 ‘용중(用中)’이라는 말로 청실과 홍실을 엮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실을 엮기 위해서는 자주파와 동맹파로 금이 간 그 실패부터 튼튼히 할 일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