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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질서유지권 발동…50분간 의사당 활극

입력 | 2004-03-12 18:09:00


한국 정치사를 완전히 새롭게 쓴 ‘50분간의 드라마’였다.

12일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의결은 여야 의원들간의 격렬한 몸싸움과 고함, 울부짖음 속에 오전 11시56분 상황이 종료됐다.

▽아수라장된 역사의 현장=오전 11시6분,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본회의장에 입장, 왼쪽 계단을 통해 의장석으로 접근하면서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의장석 사수조인 열린우리당 안영근(安泳根) 임종석(任鍾晳) 의원 등이 “저지하라” “의회 쿠데타다”라고 울부짖으며 저항했고 장영달(張永達) 의원은 의사봉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의장석 확보를 위한 심한 몸싸움 와중에 여야 의원들끼리 뒤엉켜 넘어지기도 했다. 경위들은 이부영(李富榮) 의원 등 7명의 의원을 끌어냈으며 이들은 “이 나쁜 놈들아” “너희들이 깡패들이냐”며 필사적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에 박 의장은 계속 지켜볼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왔지만 야당 의원들이 가로막았고 박 의장은 “야, 이 병신들아”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등 모두가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14분 뒤 결국 의장석을 지키던 장영달 의원이 끌려 나왔고 의장석 진입에 성공한 박 의장은 본회의 개회 선포와 함께 곧바로 무기명 투표를 선언했다. 오전 11시22분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의장석 왼편의 기표소만을 이용해 투표를 진행했다. 정동영(鄭東泳) 의장 등 열린우리당 의원 10여명은 의석에 올라가 “학살극이다” “정권찬탈 중단하라”며 투표 중단을 요구했다.

소란 속에서 투표가 마무리되고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의원이 의장석을 향해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자 박 의장은 투표 종료와 개표를 선언했다. 오전 11시56분 박 의장이 개표 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명패와 구두, 서류 등을 의장석으로 집어던지며 거칠게 반발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분노한 여, 착잡한 야=열린우리당 의원들은 TV카메라석을 향해 서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불렀다. 김부겸(金富謙) 의원은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탄핵안을 막아내지 못한 죄인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지켜주십시오”라고 했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어 이들은 본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갖고 “대한민국 헌정사와 민주주의 역사에 조종(弔鐘)을 울린 저들에 맞서 제2의 6월 항쟁에 나설 것”이라며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뒤 원내대표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했다. 김영춘(金榮春) 의원은 “오늘 이 더러운 국회의원 배지를 떼어 버릴 것”이라며 흥분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도 착잡한 표정이었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와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대표는 각각 의원총회를 연 뒤 기자회견을 갖고 “사필귀정이다. 탄핵안 표결에서 이겼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며 “고건(高建) 국무총리가 국정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때늦은 사과와 박 의장의 강공=이에 앞서 오전 9시50분경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입장 표명 사실이 야당 의원들에 전해졌으나 이미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는 “장난하자는 것인가”라고 반발하며 찬성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편 박 의장은 이날 주저하지 않고 질서유지권을 발동했으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향해 “자업자득이다”고 힐난하는 등 정공법을 택했다.

박 의장은 이날 오전 10시 노 대통령의 사과 발언 내용을 전해 듣고 “이래서야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