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프/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355쪽 1만4500원 파라북스
이 책의 부제는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이다. 사후의 영혼세계를 나타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영어 ‘Stiff’는 (시신의) ‘경직’을 뜻하며 이 책은 ‘인간 시신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시신이야말로 ‘슈퍼영웅’이라 불러 마땅하다고 말한다. ‘비록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지만 이들은 2000년 동안 자발적으로 또는 자기도 모르게 과학의 진보에 동참해 왔다.’
단지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실의 칼날 앞에서만 이들이 용감한 것은 아니다. 시신은 ‘불길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고 자동차에 올라 건물 벽과 정면충돌하기도 한다. 총을 쏘고 모터보트가 허벅지를 가르고 지나가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동시에 여섯 군데에 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시신을 이용한 자동차 충돌실험에 동참하고 비행기 사고 시신 분석에 참여한 의사와 인터뷰했다. 범죄의학 연구를 위해 시신을 노천에 방치해 둔 잔디밭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며 섬뜩하리만큼 냉정한 보고를 쏟아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체가 노천에서 사라지는 과정을 저속촬영한 후 고속으로 재생하면 ‘오즈의 마법사’에서 마녀가 녹아 사라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지나치게 냉혹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유머’를 택한 저자의 필체는 책읽기에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저자는 인간에게 헤아릴 수 없는 도움을 줘 온 시신에 대해 ‘평안히(In Peace)’ 쉬시라고 기도한다. ‘토막으로(In Pieces)’가 아니라.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