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제정호 교수팀은 살아 있는 쥐의 미세혈관(지름 0.01mm 이하)을 X선을 이용해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데 9일 성공했다. 세계 처음이었다.
이 연구가 과학계의 주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약품(조영제·照影劑)을 사용하지 않고 매우 가는 핏줄을 촬영했다는 것이다. 조영제는 X선을 촬영할 때 혈관이 잘 보이도록 주입하는 물질. 심장 질환자에게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제 교수팀의 연구 성과는 앞으로 심장 질환이나 암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특수한 종류의 ‘빛’을 만들어내는 시설이 포항공대 내에 가동 중인 ‘방사광 가속기’다. 국내에 유일한 이 가속기가 생긴지 올해로 꼭 10년만에 첨단 과학기술을 이끄는 버팀목으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988년 포항공대 개교와 함께 추진된 방사광 가속기는 6년 동안의 준비를 거쳐 탄생했다. 세계 5번째였다.
1500억원을 투입해 건립한 가속기는 지금까지 3000억원을 투자해 기능을 높이고 있다. 현재 가속기는 세계적으로 14대밖에 없다.
방사광이란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부터 적외선 자외선 X선 등 여러 가지 빛을 가리킨다. 이 같은 방사광을 만들어내는 시설이 가속기다. 퍼지지 않는 강력한 빛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미세혈관 같은 것을 관찰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가속기를 통해 얻는 빛은 매우 다양해 의학 물리학 생명과학 재료공학 등에 활발하게 이용될 수 있다. 자치단체들이 바이오기술과 나노기술을 활용한 산업에 앞다퉈 뛰어드는 것도 가속기 때문에 가능하다.
신약 개발에도 가속기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가속기를 이용한 핵발전소는 핵폐기물이 생기지 않아 안전하다.
그동안 포항방사광가속기의 경우 550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해 무려 1400여가지의 과학기술 프로젝트가 추진됐다. 지난해 1500여명의 과학자들이 이용하는 등 가속기 이용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빛을 쪼여 무엇을 관찰하는 분야에는 대부분 가속기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속기 설계 때부터 참여한 포항가속기연구소 고인수(高仁洙·51·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 부소장은 “10년 전에는 가속기라는 말이 낯설어 ‘가습기연구소’ ‘가족연구소’라고 쓴 우편물이 많았을 정도였다”며 “이제 포항가속기는 대규모 과학기술 투자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가속기 탄생에 감격해 ‘빛을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포항=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