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얘기지만 고등학교 때 담배를 피우다 정학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날 학교 근처 당구장에서 애들이랑 내기 당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학생부 선생님들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당구 치던 아이들의 볼따구니에서 철썩철썩 불이 났습니다. 제 차례였습니다. 눈을 질끈 감고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물끄러미 제 얼굴을 훑어보며 어이없이 말했습니다.
“박중훈이! 고등학생이 당구장 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담배까지 피워?” “아, 아닌데요. 담배 피우지 않았는데요.”
“그럼, 이건 뭐야?” 하며 제 귀에 꽂힌 담배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피우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꽂아놓은 꽁초였습니다.
거짓말이라는 괘씸죄까지 추가된 전, 뺨이 부어올라 제 눈으로 제 뺨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맞았습니다.
다음날 학생부에서 저희 어머님은 한동안 훌쩍훌쩍 울고 가셨고, 전 3일 유기정학에 처해졌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소지품 검사 시간에 담배피울 때 썼던 성냥이 적발돼 또 학생부로 불려갔고 학교에 오신 어머님은 중훈이가 취미로 성냥을 모은다며 어디선가 성냥을 한 아름 구해오셨습니다. 학생부 선생님 책상에 수북이 쏟아놓은 성냥갑 덕에 전 처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 그 짧은 시간에 그리도 많이 구해 오셨는지….
그날 서울 후암동 용산고 교정을 나와 남영동으로 버스를 타러 가는 도중 못난 아들 때문에 공범이 돼 버린 어머님은 어깨를 들썩이며 구슬피 눈물지으셨습니다.
사춘기 때의 우쭐감으로 시작한 흡연은 그토록 어머님을 아프게 해드렸고, 그로부터 20년도 넘게 지난 바로 얼마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세상 누구에게나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배우들 역시 깊은 부담에 시달립니다.
아무리 초연하려고 노력해도 관객이 외면해 인기가 떨어지면 어쩌지, 내가 연기의 한계점에 온 것은 아닐까 등 배우 생존의 기본적 고민부터 시선을 받으며 항상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숨 막힘까지 다양하기도 합니다. 이런 중압감을 느낄 때마다 쭈욱 빨아 내뱉는 구수한 담배 한 모금은 긴장을 풀어주는 데 더 없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전 충무로 배우 중 대표적 애연가로 불렸고, 사실 담배 찬양자였습니다.
그래서 TV 9시 뉴스시간에 흡연자의 사망률 어쩌고저쩌고 하면 채널을 잽싸게 다른 곳으로 돌렸고, 각종 언론의 흡연 폐해보도도 애써 외면했습니다. 아침마다 마른기침과 함께 가래를 쏟아내면서도 담배가 주는 구수함과 즐거움에 어쩌지 못하다가 금연을 결심한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어쩌다 아이들과 놀려고 하면 이 녀석들이 담배 냄새난다며 도무지 제 옆에 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는 늘 소외된 아빠였습니다.
어머님께는 죄송하지만 그토록 어머님이 원할 땐 하지 못했던 결심을 자식들 때문에 하게 되었습니다.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패치의 도움을 받아가며 고통스러운 담배 끊기에 성공한지 2년 3개월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금연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흡연자들에겐 금연 권유가 더욱 더 지긋지긋할지 모르겠지만, 관객님과 독자님들께 과분한 사랑을 받는 제가 이 좋은 걸 ‘지겨운 이야기’라는 이유에서 침묵한다면 그 또한 저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한 말씀 올립니다.
담배 끊으니까 위생, 건강, 정신 모든 면에서 너무너무 좋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화끈하게 다시 한번 밀어붙이면 어떨까요? 파이팅!
moriejhp@hanmail.net
#추신
○ 금연에 완전히 성공한 배우-안성기
○ 거의 성공한 배우-김승우 이정재
○ 피웠다 끊었다를 반복하며 아직도 의지를 불태우는 배우-신현준 이성재 주진모 외 다수
○ 원래 안 피우는 배우-차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