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개봉 당시 반 유대주의 논란을 야기한 멜 깁슨 감독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사진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미국 할리우드의 빅 스타이자 1996년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멜 깁슨의 야심작이다. 2월 미국 개봉 당시 반(反)유대주의와 잔혹한 고문 묘사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총무이자 경기천주교신문 편집주간인 홍창진 신부의 글을 통해 영화 속의 종교적 쟁점을 살펴본다. 국내에서는 4월2일 ‘15세 이상 관람 가’ 등급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는 한 마디로 신약성서의 4복음서에 이은 ‘멜 깁슨의 제5 복음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음에 충실한 영화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깁슨은 이 작품이 할리우드에서 투자를 받는 데 실패하자 사재 3000만 달러(약 360억원)를 들여 제작과 연출을 맡았다. 극중 예수(짐 카비젤)와 그의 제자 등 유대인들은 당시 사용됐던 아람어를, 로마인들은 라틴어를 쓴다는 점도 고증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깁슨의 의욕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예수가 겟세마니 동산의 기도이후 죽기까지 12시간의 짧은 여정을 그렸다. 영화는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유대인의 광기(狂氣)와 예수의 수난장면을 섬뜩하리만큼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채찍에 맞아 갈비뼈가 드러나는 모습은 물론 로마 병사들의 무차별 폭행 장면까지 느린 화면으로 보여준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이 대목에서 유대인을 예수를 죽인 장본인으로 몰아감으로써 반(反) 유대정서를 부추긴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영화는 지난달 미국 개봉에서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에 오르는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반유대주의 문제는 깁슨의 인간적 실수이거나 고도의 계산된 마케팅 아닐까? 극적인 효과를 노려 유대교도들의 조상들에게 과장된 ‘악역’을 맡겼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의 주요 관객인 미국인들의 반(反)유대주의를 부추기고 싶은 상업적 충동이 발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유대교도가 거의 없는 국내의 종교적 상황을 감안하면 이 같은 논란은 재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패션…’은 ‘가스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예수의 마지막 유혹’ 등 예수의 생애를 다룬 영화들 중 종교적 색채가 가장 강하다. 하지만 이 점이야말로 일반 관객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가 예수의 고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반면 그의 고뇌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대적 해석의 문제가 발생한다. 현대인들은, 신으로 고백되지만 인간인 예수를 통해 자기의 고통을 치유 받을 수 있다. 예수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의 삶을 통해 내 삶과 연관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신이기만 한 예수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친다. 예수는 그 순간 죽음을 앞두고 정말 주님께 버림받았다는 인간적 고뇌가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주님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소서”라는 표현을 통해 신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이 장면을 그저 성경을 읽어주듯 그냥 단 한 마디로 지나가는 것이 깁슨의 한계다.
인간은 모두 자기완성과 해탈을 추구한다. 크리스찬은 이를 구원이라고도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는 구원의 모델이다. 현대의 시점에 씌어진 깁슨의 제5 복음서는 예수의 인간적 고뇌를 보다 더 리얼하게 표현했어야 했다. 인간이며 구세주인 예수는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경기 과천 별양동 성당 주임신부 duima@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