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서울시 우슈연합회
“세계가 제 집입니다.”
집이 어디냐는 물음에 돌아온 그의 대답. 보통 1년에 10개월은 세계 순회강연에 할애한다는 천샤오왕(陳小旺·58). 태극권의 발원지인 중국 허난성 원현 천자거우(陳家溝·천씨 집성촌)의 19대손으로 진가 태극권 11대 장문인이다.
현존 태극권사 가운데 최고수로 꼽히는 천샤오왕이 서울시우슈연합회 초청으로 태극권의 진수를 선보이기 위해 15일 내한했다. 23일 출국 때까지 강연 및 태극권 교실 등으로 빡빡한 일정이다.
건강이 화두인 21세기는 중국 전통 무술의 맥을 잇고 있는 천샤오왕에게 세계를 활동 무대로 선사했다.
“태극권은 자연스러움과 균형을 추구합니다. 이 두 가지는 바로 건강의 핵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태극권은 형의권, 팔괘장과 함께 내가(內家)권의 대표적인 무술로 꼽힌다. 팔 다리 등 신체의 힘인 외공을 강조하는 다른 무술과 달리 의식과 정신의 단련, 즉 내공을 중시한다. 부드럽고 완만한 동작에 의식의 흐름 및 호흡을 결합한 무술이어서 요가와 함께 종합심신수련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7살 때부터 태극권을 수련한 천샤오왕은 1979년 중국 전국무술대회 태극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전국 또는 성급 태극권 시합에서 10여차례 연속 우승했다. 천샤오왕은 국보급 인사로 분류돼 중국 정부로부터 출국 금지 대상이었다가 이 조치가 풀린 85년부터 본격적으로 태극권 전파에 나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94년 국제태극권연회에서 태극권 대사(大師)로 추대됐다. 지금까지 직접 가르친 제자만 세계 30여 개국 10만명에 이른다.
태극권이 현대에 심신수련법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뿌리는 엄연히 격투기. 태극권의 위력을 보여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그는 기마 자세를 잡은 뒤 힘껏 밀어보라고 했다. 기자가 그의 두 어깨를 부여잡고 전력을 다해 밀었지만 마치 벽을 미는 듯 꿈쩍하지 않았다. 이번엔 그가 “버텨보라”고 한 뒤 오른손을 뻗어 가볍게 기자의 가슴을 밀자 속수무책으로 밀려 바닥에 쓰러졌다.
태극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은 어떤 상태일까. 천샤오왕은 “5음5양인 상태”라고 말했다. 음과 양이 정확히 5대 5라는 뜻으로 어떠한 동작, 어떠한 상황에서도 몸과 마음이 항상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 격투기란 상대방의 균형을 무너뜨려 제압하는 것인데 어떤 상황에도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면 무적이라 할 만하다. 또한 마음이 항상 균형을 유지한다면 이는 바로 도인의 경지다.
천샤오왕은 5음 5양에 도달했을까. 그는 조금 생각하더니 “아직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상태에 도달해도 ‘아직 아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극권은 심신을 수련하는 과정일 뿐이며 수련에는 끝이란 없다는 말일 터였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