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발언을 한 번 하면 ‘귀여운 경고’, 한 번 더하면 ‘뜨거운 경고’.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주최한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범국민행동’이 발언자들을 위해 준비한 피켓의 내용이다.
이날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 등 1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오후 7시부터 오후 9시경까지 열린 집회는 경찰이 촛불집회를 문화행사가 아닌 불법집회로 규정한 뒤 처음 열려 경찰의 대응방식과 집회의 성격에 관심이 집중됐다.
집회 참가자 수는 탄핵안 가결 바로 다음날인 13일 7만명을 정점으로 14일 4만5000명, 15일 4000명, 16일 3000명 등으로 빠르게 줄어드는 양상.
이날 범국민행동은 경찰의 방침을 의식한 듯 참가자들의 정치적 발언을 자제시키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주최측은 또 문화행사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 참가자의 발언보다는 민중가요 등 노래자랑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구성했다.
그러나 주최측이 나눠준 소형 피켓에는 여전히 ‘탄핵무효’ ‘민주수호’ 등 정치적 구호가 적혀 있었다. 또 집회 참가자들의 노래 중간 중간에 ‘국민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자들이 총선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하자’, ‘족벌언론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등의 내용도 있었다.
참가자들이 별도로 준비해온 유인물에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쟁취하자’,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회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자’는 구호들이 적혀 있었다.
한 집회 관계자는 “유인물은 주최측에서 나눠준 적이 없다”면서도 “참가자들이 발언하러 올라갈 때 자제 요청을 하고 경고카드를 보여주는 것 외에 즉흥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이날 참가자들의 발언을 문제 삼아 자진해산을 권고하기도 했지만 주최측이 “경찰의 지적을 인정한다.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집회는 계속됐다.
이날 집회를 통제한 경찰 관계자는 “집회를 전체적으로 살펴본 뒤 불법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며 “그러나 오늘 나온 구호들만 모아 봐도 지극히 불법적인 집회”라고 평가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