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코스타리카 몬테 베르데 정글을 이동하는 관광객들.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이지만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상품 중의 하나이다. 사진제공 함길수씨
곳곳이 파헤쳐진 고속도로와 먼지가 펄펄 나는 비포장 도로. 국경을 통해 진입한 니카라과의 모습은 10여 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중남미의 현실이 대개 그러하지만 힘겹게 생활하는 이곳 서민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자연과는 매우 대조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나 라틴 특유의 낙천성과 쾌활함을 만날 수 있다.
○화산-호수 어우러진 니카라과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모모톰보 화산이다. 그 아래 거대한 마나과 호수가 정겹게 펼쳐져 있다.
두 번에 걸친 대지진과 내란, 혁명으로 이렇다 할 관광자원조차 없는 마나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도시의 상징이 ‘혁명 광장’이다. 또 인근의 국립궁전과 1972년 지진으로 폐허가 된 성당의 초라한 외관만이 그나마 볼거리로 남아 있다.
호수 주변에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가난한 어린 소년들이 몰려든다. 풀로 엮어 만든 장난감과 껌을 팔며 가족의 생계를 돕는 아이들이다.
슬픈 현실을 뒤로 하고 중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코스타리카로 향했다.
○대자연의 나라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의 매력은 사람이 살지 않는 대자연에 있다. 각종 자연보호구, 국립공원이 70여개에 이르며 각종 정글투어, 어드벤처, 레포츠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자연보호구내의 토지 소유자들은 대략 소유지의 30%가량은 개발하지 않고 보호하는 것을 규정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모험의 나라 과테말라
과테말라의 국조 케찰, 황금개구리 등 진기한 생태계를 보기 위해 몬테 베르데의 운무림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정글 탐사뿐만 아니라 각종 모험도 마련돼 있다. 깊고 험한 정글 사이를 로프로 연결하여 탐험하는 것이다. 50∼300m에 이르는 여러 가지 쇠줄에 목숨을 의지한 채 정글을 이동한다.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이 코스는 인기 만점인 관광 상품이다.
나비 정원도 진기하기 그지없었다. 커다란 온실로 된 나비 정원에 들어가면 날개가 투명한 나비, 나무 잎사귀처럼 생긴 나비, 부엉이를 닮은 나비, 태극무늬 나비 등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나비들의 파노라마가 동화처럼 펼쳐진다.
○세계의 십자로 파나마
코스타리카 국경을 넘어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 입성한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끼고 있는 파나마의 근·현대사는 파나마 운하에 집약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음날 아침 파나마 운하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쪽 첫 수문인 미라플로레스로 향했다. 태평양보다 대서양 쪽이 수위가 높은 파나마 운하는 수위를 바꾸기 위한 개폐식 수문이 세 군데 있는데 그 중 파나마시티에 가까운 미라플로레스는 최근 새로 단장을 해 관람 스탠드를 설치하고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운하의 시발점인 발보아 항을 출발하는 모든 선박은 미라플로레스를 지나게 된다. 대형 선박이 수문에 다가서자 강철 문이 서서히 열리고 배가 수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을 지나는 대다수의 물량은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남미의 관문 콜롬비아
파나마를 출발해 남미의 관문 콜롬비아로 들어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라 불린다. 정글과 비포장 도로 사이로 게릴라가 출몰해 누구도 다니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나마에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까지는 항공편을 이용한 뒤 다시 육로로 칼리에 입성했다.
아름다운 산과 정글도 그 모습 그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칼리까지는 불과 500km에 지나지 않지만 워낙 산세가 험하고 정글이 이어져 12시간 이상을 달려야만 한다. 도로 어디에나 게릴라 출몰 방지와 시민보호를 위해 경찰과 무장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이곳은 낮에도 일반 차량을 보기 힘들며, 화물을 잔뜩 실은 트럭만이 오갈 뿐이다.
산맥과 계곡을 지나자 산속에 있는 작은 도시가 나타났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별탈 없이 지나왔지만 나중에 들으니 게릴라들의 거점 도시였다고 한다.
도시에는 온통 노획한 물건들을 내다파는 수많은 전당포와 술집, 호텔과 복권 판매소 등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소비와 향락의 모습이 판을 치고 있었다.
함길수 여행칼럼니스트 ham91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