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마노커뮤니케이션
사람들이 줄리아 로버츠를 기억하기 시작한 건 대체로 1988년 작인 ‘미스틱 피자’부터였는데 반응들이 거의 비슷했다. 그 여자 입 한번 무지하게 크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오빠 에릭 로버츠를 뛰어 넘는 대스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같은 예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90년 리처드 기어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귀여운 여인’이 대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느꼈던 매력은 아마도 ‘미국식 건강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큰 입으로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모습이야말로 줄리아 로버츠의 트레이드 마크. 로버츠가 웃으면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연인인양 착각에 빠진다. 거침없고 솔직한 그는 자신보다 못난 사람조차 활짝 웃으며 반겨줄 여자처럼 느껴진다.
90년대 중반까지 그는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적과의 동침’ ‘사랑을 위하여’ ‘펠리칸 브리프’ ‘아이 러브 트러블’ 등 작품마다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지언정 그의 건강하고 꿋꿋한 이미지는 잘 먹혀 들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다소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메리 라일리’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이 만든 고딕 풍의 호러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하녀의 시선에서 그려낸 작품이었다. 독특한 시각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재앙이었다. 이후 선택한 영화 ‘마이클 콜린즈’도 마찬가지. 닐 조단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에서 평론가들은 그에게 도대체 무슨 역을 했느냐고 물었다.
‘메리 라일리’와 ‘마이클 콜린즈’의 참담한 실패 이후 그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오랜 진리를 깨달은 듯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로 컴백했다. 더못 멀로니, 카메론 디아즈와 호흡을 맞춘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으로 특유의 경쾌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회복한 줄리아 로버츠는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노팅힐’ ‘런어웨이 브라이드’ ‘에린 브로코비치’ ‘멕시칸’ 등 일련의 출연작은 로버츠를 할리우드 부동의 인기 1위의 여배우로 등극시켰다. 특히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그는 가진 것 없고 무식하지만 끈질긴 집념으로 대기업의 환경파괴와 맞서 싸우는 여성을 연기해냄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전방위 연기력의 소유자임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개봉과 동시에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떼어 놓은 당상처럼 보였고, 실제 로버츠는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신작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그는 브로코비치 때처럼 강인한 여성상의 이미지를 선보인다. 다만 50년대에 활동했던 지적인 미술사 교수란 설정 때문인지 그때보다 여성미가 넘치고 차분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 ‘대단한’ 작품과 연기가 아니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50년대의 시대배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로버츠의 성숙해진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일부 관객들에겐 충분히 볼만한 작품이 될 듯하다. 12세 이상 관람 가. 19일 개봉.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