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조차 어떤 규제가 있는지, 어떤 혜택이 있는지 모른다면 어떻게 공장을 짓습니까? 언제까지 민원인이 법전을 들고 다니며 설명을 해줘야 하나요?”
충남 보령시에서 창업형 공장 설립을 준비 중인 H사 김모 사장. 그는 1999년 외환위기 여파로 공장 문을 닫은 뒤 지난해부터 다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장 터에 삽 한 번 대지 못했다.》
김사장이 처음 부닥친 장벽은 도로 개설 문제. 작년 7월 해당 지역 국도유지사업소는 공장부지 앞에 있던 폭 3m의 도로를 폭 6m에 길이 180m로 확장토록 요구했다.
김 사장은 이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어 국토관리청에 확인했다. 결과는 해당 도로 용지가 국도유지사업소의 실수로 애초 토지 보상이 안 된 채 무단 점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김 사장에게 도로를 확장토록 해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기존 도로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경찰서에서 문제가 생겼다. 경찰서가 국도유지사업소에 보내야 하는 교통량 유발 보고서가 중간에 증발돼 버린 것이다.
경찰서 교통계는 신청 3일 만에 공문을 보냈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김 사장은 경찰서에서 직접 공문을 받아 국도유지사업소에 제출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로 부문 협의가 끝난 게 지난해 11월. 처음과 전혀 달라질 게 없는 사안 때문에 5개월이 지났다.
이어 본격적인 공장 부문 협의. 시청의 농지과, 산림과, 환경과 등에 일일이 들러 서류를 제출했다. 이번에는 농지 전용(轉用)에서 제동이 걸렸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에서 정한 규정이 농지법과 상충된다는 게 뒤늦게 발견된 것.
농지법은 설립 부지가 계획관리지역이면 해당 공장을 지을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국토계획법상 계획관리지역은 2007년까지 각 지자체가 지정토록 돼 있다. 따라서 전국 어디에도 아직까지는 계획관리지역이 없는 셈이다.
결국 김 사장은 공장 업종을 바꿔 다시 인·허가 절차에 들어가야 했다. 비(非)계획관리지역에 설립 가능한 공장으로 신청한 것이다.
“설립 준비 절차가 겨우 끝났습니다. 이제는 건축 관련 협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얼마나 더 뛰어다녀야 할지 걱정됩니다.”
▽법적 규제 앞서는 인적(人的) 규제=예비 창업자들은 법적 규제도 문제이지만 인·허가 과정에서 부딪쳐야 하는 공무원들의 재량적 규제가 더 고통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한 지방자치단체 안에서도 부서마다 의견이 다른 데다, 공무원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설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사장의 사례에서 보듯 공장을 설립하려면 도로유지사업소, 국토관리청, 지방환경청, 경찰서, 해당 지자체, 세무서는 물론 건설교통부나 환경부까지 들러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규제는 신설됐지만 담당 인력이 부족해 인·허가가 지연되는 수도 비일비재하다. 작년 1월 1일부터 사전환경성검토만 해도 1만m² 이상 공장은 모두 받아야 하지만 이를 담당하는 인력은 태부족이다.
금강유역환경청의 경우 대전과 충남, 충북 7개 시군을 담당하지만 환경성검토를 맡는 직원은 고작 2명에 불과하다. 반면 지난해 접수된 환경성검토 신청은 200건이 넘었다. 이 때문에 담당 직원이 현장 실사(實査)를 할 때까지 50여일을 기다려야 한다.
인·허가 공무원들이 관련 업무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자리 이동이 잦다보니 복잡한 세제(稅制)나 법규 해석을 민원인에게 맡겨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는 사례도 많다.
▽서류에 치이는 인·허가=지난해부터 개발행위 제한이 강화되면서 인·허가에 필요한 서류도 대폭 늘었다.
사업계획승인신청서 양식은 큰 변화가 없지만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하려면 위치도와 현장사진, 토지조서, 피해방지계획서, 자금조달계획, 환경오염 예방 및 저감 대책, 시설물 관리 및 운영계획, 공장 건축을 위한 자재 명세와 운반 방법, 오수맨홀상세도 등 수백쪽에 달하는 서류를 내야 한다.
특히 지적도나 토지대장, 토지이용계획확인원 등은 공무원들이 직접 확보하도록 돼 있지만 민원인들이 ‘알아서’ 제출해야 한다.
또 환경이나 토목 관련 서류는 전문가에게 의뢰하지 않으면 작성이 불가능해 별도의 용역비용이 추가된다.
중앙기업상담의 김주광(金周光) 사장은 “창업 관련 규제가 너무 많다보니 공무원들도 이를 다 파악하지 못해 인·허가 과정에서 재량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더욱이 창업 관련 기관이나 부서간 협조 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아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