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18일 1973년 10월 최종길(崔鍾吉·사진) 서울대 법대 교수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서 ‘유럽 거점 간첩단’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의문사한 데 대해 유감을 공식 표명했다.
국정원은 이날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실체적 진실 여부를 떠나 유가족을 비롯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최 교수의 사인을 밝히기에는 현재 보존된 문서로는 부족하고 당시 조사에 관여했던 관계자들이 오래 전 퇴직 또는 사망해 진상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안타깝다”며 “현재 법원에서 진행 중인 재판 결과를 겸허한 자세로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부장판사 이혁우·李赫雨)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당시 중정 제5국 공작과장이었던 안모씨(75)는 “최 교수는 간첩이라고 자백한 적이 없으며 간첩임을 자백하고 투신자살했다는 중정 발표는 조작된 것”이라고 증언했다. 최 교수의 사인에 대한 중정의 발표가 조작된 것이라는 수사관의 법정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씨는 “중정은 간첩사건을 조사할 때 통상 고문을 가했고 고문을 받고도 자백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 교수 담당 수사관인 차모씨가 욕을 하며 ‘사실대로 불라’고 소리칠 때마다 최 교수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는 것을 옆방에서 선잠을 자며 모두 들었다”고 증언했다.
안씨는 “당시 수사계장이던 김모씨가 최 교수가 죽은 뒤 비상계단 앞에서 두 손으로 밀치는 시늉을 하며 ‘최 교수를 여기서 밀어버렸다’고 말했을 때 주무 수사관인 차씨가 밀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진정으로 재수사가 시작되자 당시 수사관들이 모여 말을 맞춘 뒤 서울지검의 조사를 받았다”며 “최 교수와 유족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 최 교수와 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 조카의 손모씨는 “큰 외삼촌(최 교수의 형)은 외삼촌이 돌아가신 뒤 직장을 나와 30년째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다 얼마 전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당시 중정 감찰실 직원이었던 막내 외삼촌(최 교수의 동생)은 자신이 형을 중정에 직접 안내했다는 사실 때문에 심한 정신적 고통과 양심의 가책을 받아 왔다”고 말했다. 최 교수 사건을 폭로했던 함세웅(咸世雄) 신부는 “최 교수 부인은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찾아왔을 때도 집 앞 골목을 지키던 중정 요원들 때문에 문을 열어주지도 못하고 돌아가 달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울분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