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油價)가 13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공(高空)행진을 거듭하면서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특히 유가 상승세가 장기화할 경우 이제 막 회복기에 진입한 미국 등 선진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 수출에만 의지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유가 급등 배경과 전망=17일(현지시간) 국제 유가가 예상치 않은 폭등세를 보인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의 석유제품 감소 때문. 미 에너지정보청(EIA)의 이날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휘발유 및 중간유분(油粉) 재고는 전주보다 각각 80만배럴과 90만배럴 줄었다.
반면 미국의 휘발유 수요가 전주 대비 3만배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지난 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발생한 열차 폭탄테러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투기적 수요까지 가세해 유가 상승을 부채질한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유가가 지속적인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근본 배경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減産) 정책과 함께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과 미국 등 선진국의 석유 수요 증가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의 투자자문사 피맷USA의 존 킬더프 부사장은 “당분간 중국과 미국에서 늘어난 석유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배럴당 40달러 돌파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2·4분기(4∼6월)부터는 북반구의 난방용 석유 수요가 줄어드는 계절적 비수기가 시작되는 데다 이라크에서 원유 공급이 재개되기 때문에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석유공사 구자권(具滋權) 해외조사팀장은 “이라크의 원유 수출 재개와 OPEC 회원국들의 감산정책 불이행 등 가격 하락 요인이 있는 만큼 유가가 조만간 안정되겠지만 될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큰 폭의 가격 하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경기 회복 지연 우려=유가 상승은 소비 위축과 생산 차질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세계 경제의 동력이자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투자회사인 메릴린치는 10일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 상승으로 휘발유값이 0.1달러 오를 때마다 미국의 소비자 지출이 10억달러씩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의 회복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선진국의 소비 위축은 곧 수출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배럴당 유가가 연간 5달러 오르면 경제성장률은 0.3% 떨어지고 물가는 0.5% 오른다.
한은은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5.2%로 예상하면서 유가가 배럴당 26달러(북해산 브렌트유 기준)에 머문다는 가정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17일 현재 브렌트유는 34.41달러로 작년 평균치보다 5.71달러, 한은 전망치보다는 8.41달러나 높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