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딱히 다른 날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우리 인생 속의 그저 그런 하루였다. 수상한 다섯 명의 남자가 뾰족한 우산 끝으로 묘(妙)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꼭’ 쑤시기 전까지는….”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극히 사적(私的)이고 국적불명의 ‘이방인 소설’을 써온 그였지만 ‘도쿄지하철 독가스 사건’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피해자 60명을 인터뷰해 1997년 르포 ‘언더그라운드’를 펴냈다.
그는 뉴스에서 이 사건을 처음 접하고 도쿄의 땅 밑에 사는 가공의 괴물 ‘야미쿠로’를 떠올렸다. ‘야미쿠로’는 10년 전에 그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두 눈이 없고,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고사는 사악한 동물이다.
“옴진리교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공포, ‘야미쿠로’를 지하철의 깊은 어둠 속에 풀어놓았다.”
1995년. 그 해에 범죄 없는 나라 일본의 ‘안전신화’는 무너졌다. 1월 ‘한신 대지진’으로 60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두 달 뒤에는 도쿄지하철에 사린가스가 살포돼 12명이 숨지고 5000여명이 중독됐다.
파괴와 생식(生殖)을 관장하는 힌두교의 시바신을 섬긴다는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도쿄의 그리스도’를 자처하며 “미국에서 날아오는 가스구름(핵)으로 아마겟돈이 시작된다”고 종말론을 퍼뜨렸다.
신도들은 아사하라가 목욕한 물인 ‘기적의 못’에서 떠온 물 한 잔으로 신심(信心)을 보상받았다. 그의 피를 마시기도 했다.
추종자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독가스사건의 핵심세력은 도쿄대 와세다대 등 명문대를 나온 의사 과학자 기술자였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였다.
그들은 헬기를 이용해 도쿄 상공에 사린가스를 살포할 계획도 꾸미고 있었다.
아사하라는 사건 발생 9년 만인 2004년 2월 도쿄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언제 형이 확정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변호인단의 지연작전으로 무려 257회의 공판이 열렸다.
무슨 영문인지 그는 1997년부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아사하라는 아직 살아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