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 시절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다 숨진 최종길 전 서울대 법대 교수의 사망원인을 결정적으로 밝히는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뒤늦게나마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이 저질렀던 고문살해 및 은폐조작을 고백한 중앙정보부 전 공작과장 안모씨의 용기는 높이 평가돼야 한다. 의문사에 관련된 수사공무원의 최초 증언이라는 의미도 크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최 교수가 간첩죄를 자백하고 심리적 갈등 때문에 투신자살했다는 중앙정보부 발표와 달리 고문치사 후 자살로 조작됐다는 내부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조사활동에 협조하지 않거나 방해해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안씨의 증언으로 미궁에 빠질 뻔했던 사건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안씨는 “최 교수가 심한 고문을 받아 의식을 잃자 죽은 것으로 잘못 알고 비상계단에서 최 교수를 밀어 투신자살로 조작했다”고 증언했다. 88년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진정으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관련 수사관들이 말을 맞추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고문살해의 진상이 30년 동안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던 이유가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의문의 죽음에 관여했거나 고문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참회와 고백 없이는 어둠의 시대에 저질러진 의문사들이 영구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고문치사 범죄의 공소시효가 지난 데다 관련자들이 입을 봉해 강제권이 없는 의문사위의 조사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안씨의 증언을 계기로 의문사 관련자들의 참회와 고백이 이어져 지난날 국가폭력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