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3인전에 나오는 미국 작가 수 윌리엄스의 작품 ‘Duck (2004년)’.화려한 형광색의 물컹하고 유연한 도형들은 여성의 몸을 패러디한 것들이다. 사진제공 국제갤러리
이 시대 지구촌을 살아가는 여성 작가들의 고민은 어떤 것일까.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4월23일까지 열리는 외국 여성 작가 3인전은 이란 이집트 미국에서 태어난 뒤 파리 런던 뉴욕 등에서 자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40∼50대 여성들이 ‘회화’라는 언어로 만난 작품전이다.
가다 아메르(Ghada Amer), 수 윌리엄스(Sue Williams), 쉬라제 후쉬아리(Shirazeh Houshiary)는 한국인에게는 낯설지만,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가인 데다 미국과 유럽의 유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중견들이다.
이들의 작품경향은 ‘혼성’이다. 작품세계는 서로 다르지만 남성과 여성, 현실과 초월, 민족과 세계 등 다양한 담론을 한꺼번에 버무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우선, 이들은 직설적인 페미니즘을 외치지 않는다. 이집트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20여년 간 활동하고 있는 가다 아메르(41)는 포르노 잡지 모델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긴 뒤 실을 사용해 마치 자수를 놓듯 추상적 이미지를 덧입혔다. 실이나 바늘, 포르노 모델 같은 여성적 소재로 여자의 삶을 옥죄는 억압을 이야기하지만 그 방식은 따뜻하고 유쾌하다. 회화와 자수가 만난 그의 화면은 동서양의 혼종으로도 읽힌다.
미국 작가 수 윌리엄스(50)는 화려한 형광색으로, 한국 만화 둘리에서 차용한 듯 물컹하고 유연한 여러 도형들을 캔버스에 펼쳐 놓았다. 멀리서 보면 화면이 꿈틀거리는 듯하지만 다가가서 보면 도형 하나하나가 여성의 유연한 신체를 패러디한 모습이다. 작가는 “내가 30대였을 때 미국 화단은 여자도 남자처럼 어려운 미술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회화에 매진하는 여성 화가는 은근히 무시당했다”며 “여성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축소시키지 않는 균형감각을 가지려 했다”고 말했다.
이란 태생으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쉬라제 후쉬아리(49)는 이성과 영혼 사이의 내면세계를 탐구한 추상작업을 선보인다. 극도로 정제된 기하학적 이미지는 젠더나 민족성을 극복한 작가가 종착점으로 선택한 수피즘(Sufism·이슬람 신비주의)에의 몰두를 반영하고 있다. 02-735-8449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