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에 음식만화 ‘식객’을 연재하는 허영만씨(58). 만화가 생활이 어느덧 39년째지만 아직도 직접 그림을 그린다. 거장이란 호칭이 아깝지 않다. 한때 과로로 사흘간 입원한 것을 빼면 건강체질이다. 비결을 물었다. 점심식사 후 30분간 낮잠을 잔단다. 4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습관이다. 얼마 전부터 오전 4시에 일어나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단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그의 화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등산 VS 골프
“산은 배반하는 법이 없습니다. 조용히만 다가서면 늘 우리를 환영하죠. 사시사철 새로운 모습도 매력입니다.”
산에 푹 빠졌다. 무릎이 허락하는 한 등산은 계속할 거란다. 가까운 서울 강남의 대모산은 수시로 오른다.
허씨는 ‘당일치기’ 산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매달 3회 정도 1박2일 또는 2박3일 일정으로 산을 오른다.낮지만 인적이 드문 산을 주로 찾아다닌다. 15∼20kg 무게의 배낭을 메고 하루에 6∼8시간씩 걷는다.
6년 전 첫 산행의 추억. 어둠이 내릴 무렵 강원 홍천군의 공작산에 이르렀다. 실개천 옆에서의 야영. 별이 쏟아졌다.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다 행복에 겨워 잠에 들었다.
“새벽녘 차량 소리에 눈을 떴어요. 야영지가 아니라 비포장도로였던 거예요. 초보 티를 팍팍 낸 거죠. 뭐.”
산을 타기 전 허씨는 골프에 미쳐 있었다. 실력도 프로 수준. 18년 전 어깨 통증을 고칠 요량으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당시 오십견에 걸려 있었다. 2개월간 열심히 골프연습장에 다녔다. 신기하게 통증이 사라졌다. 재미도 붙어 한달에 25일간 필드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요즘 골프가 마뜩찮다. 기껏해야 한달에 한 번 필드에 나갈까. 실력 유지 또는 향상을 위해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스코어가 저조하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단점이다.
그러나 등산은 다르다. 체력만 있으면 된다. 무엇보다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하체 운동이 많이 된다고 그는 말한다. 등산을 위해 평소 체력단련을 하다보면 더욱 건강해지는 것도 큰 이점이란다. 그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평소 차로 이동할 거리도 가능하면 걷는다.매일 집에서 화실까지는 자전거로 이동한다. 헬스클럽에서는 하체운동을 쉬지 않는다.
# 전문 산악인 못지않다
그는 1년4개월째 백두대간을 산행 중이다. 매달 1회 2박3일씩 나눠 진행되는 이 산행은 8월에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걸까. 그는 “야영을 하면서 100일 정도의 일정으로 다시 백두대간을 밟고 싶다”고 말했다. 머지않아 4박5일 일정으로 백두산도 오를 계획이란다.
2001년 전문 산악인 박영석씨와의 만남이 그를 본격적인 산악인으로 만들었다. 20명으로 구성된 K2 원정대의 일원이 됐다. 고도 5200m의 베이스캠프까지 하루에 10∼12시간씩 일주일을 꼬박 걸었다.
하산 길은 고통이었다. 고산병에 걸려 위가 끊어질 듯 아팠다.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K2 등정은 ‘마약’이었다. 그는 산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2002년에는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즈(4884m), 유럽의 엘부르즈(5642m)를 연이어 올랐다.
물론 하루아침에 산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배낭 싸는 걸 보면 경력을 알 수 있단다. 같은 분량의 짐을 넣어도 초보자는 배낭에 다 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적어도 2∼3년은 산을 다녀야 배낭도 제대로 쌀 수 있다. 그는 “산을 배우면서 서서히 적응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산행 요령을 물었다. 물을 넉넉하게 준비하고 천천히 걸을 것. 그는 보통 1시간에 2km 정도를 걷는 ‘우보산행’을 권했다.
“1시간 걸으면 10분은 꼭 쉬세요. 과일 육포 초콜릿 사탕 잣 등 이른바 ‘행동식’도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행동식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미리 휴식시간에 먹어 두는 게 좋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가 있어요.”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전문의 평가▼
“준산악인으로 손색이 없다.”
서울아산병원 스포츠건강의학센터 진영수 교수는 만화가 허영만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말 등산객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허씨는 평소 등산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는 등 이미 자신만의 산행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 흠잡을 게 별로 없다는 평가다. 진 교수 역시 허씨처럼 열량이 높은 ‘행동식’을 준비할 것을 권했다. 초콜릿, 육포 외에 건포도와 양갱 등도 좋단다. 물통이 버겁다면 오이와 당근, 귤 등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이 경우 비타민까지 얻을 수 있다.
초보자라면 1박2일 이상의 야영이 필요한 등산은 무턱대고 하지 말 것을 진 교수는 권했다. 배낭 무게와 산의 높이까지 고려하고 평소 체력관리를 해 놓아야 한다는 것. 만약 전문 산악인을 꿈꾼다면 평소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에서 최소 1개월 이상 훈련을 거쳐야 한다. 자신만의 등산 리듬과 기술 습득을 위해서다. 특히 하체를 강화하는 운동은 평소에도 허씨처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식사는 등산 2시간 전에 하며 양도 평소의 70% 수준이 좋다. 탄수화물이 많고 지방과 단백질은 적은 게 효과적이다. 지방이 많으면 산행 중 위와 소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등산 도중 담배를 피우면 산소 부족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심장이 더 힘들어진다. 하산 때에는 터벅거리지 말고 평소보다 더 무릎을 구부린다는 생각으로 탄력 있게 내려오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