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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3월 넷째주

입력 | 2004-03-21 17:53:00

양주 양담배 등의 수입이 금지됐던 시절에도 미군부대에서 유출되거나 밀수입된 외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남대문 도깨비시장’이 그런 물건이 거래되던 대표적인 장소였다. 60년대 당국의 부정외제품 단속에서 적발된 양주 등의 상품. -동아일보 자료사진


▼法廷에 나선 첫 美國人 被告 밝히지 않은 所有權▼

-어딘지 唐慌한 氣色 보인 ‘히킨스’씨

‘와이난스’ 상사 한국지배인 ‘히킨스’씨에 대한 제1회 공판은 작 二십二일 상오 十一시十분부터 서울지법 제四호 법정에서 金인기 판사 주심, 尹斗植 검사 관여로 개정. 이날 출정한 ‘히킨스’ 피고는 곤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 날신한 몸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심리 중 침착한 어조 속에도 어딘지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사실심리에서 피고는 시가 六만불에 해당하는 밀수물자(商品 六十一종, 七一九三點)에 대한 입국경로에 대하여 “제五공군과의 계약에 의하여 군용기편으로 입국한 것이며 자기는 다만 ‘와이난스’씨로부터 상품 보관의 의뢰를 받아 보관했을 따름이며 상품 자체가 누구의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진술하고 五공군과의 계약이 해소되자 五공군의 알선으로 OPO(중앙구매처)에 상품을 매도할 것을 기도했으나 사전에 세관에 보고하여야 된다는 한국 관세법의 세칙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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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밀수 극성…한국법정 첫 미국인 피고▼

6·25전쟁 직후의 궁핍한 상황이었지만 외제 선호는 상당했다. 미군을 통해 들어온 양주와 양담배가 특권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 몰래 들여온 영국산 양복지로 옷을 해 입은 속칭 ‘마카오 신사’들이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었다. 은밀한 수요는 많고 공급은 달리니 밀수가 횡행할 수밖에 없었다.

‘와이난스’ 사건은 이 와중에 터졌다. 이는 수입금지 사치품 6만달러어치를 몰래 들여와 팔려다 적발돼 관세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으로, 우리 법정에 미국인 피고가 처음 섰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그해 동아일보에만 무려 16번이나 보도됐을 정도.

재판에서 검찰은 히킨스씨에 대해 ‘벌금 381만7791환, 반입물품 전량몰수’를 구형했으나, 그가 밀수책임자가 아니고 물품 소유주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판결로 끝났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1954년만 해도 8월 말 현재까지 적발된 밀수사건은 3982건, 3억8933만여환어치. 이는 1953년에 비해 건수로는 4배, 금액으로는 2배에 이르는 규모였다. 밀수사건이 급증한 가장 큰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단속이 본격화했기 때문. 단속에 따라 사치품의 시장가격이 폭등했고, 이에 따라 다시 밀수가 성행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 것.

외제품 수입이 자유화된 요즘, 세계적 명품들에 대한 한국인의 소비량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니 한국인의 외제 선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듯하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