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섹션에 이틀간 게재된 ‘창업 발목 잡는 규제’ 기획기사 취재를 위해 중소기업인들을 만났습니다. 한국의 규제 실태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됐습니다. 얼토당토않은 ‘황당한’ 사례가 너무 많더군요.
우선 작년부터 새로 시행된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이 문제입니다. 이 법은 난개발 방지를 위해 공장부지 면적이 1만m²(약 3030평) 이상일 때에만 허가를 내주도록 돼 있습니다. 2002년까지는 똑 같은 목적으로 공장부지 면적을 3만m²(약 9090평) 이하로 제한했지요.
작년 말 현재 전국 공장 가운데 부지 면적이 1만m² 이상인 곳은 3%대에 그칩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예비 창업자들은 1만m² 기준을 맞추지 못해 허덕이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이 겪는 또 다른 애로는 ‘계획관리지역’ 문제입니다. 정부는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준농림지 제도를 없애고 이를 관리지역으로 재편했습니다. 관리지역은 2007년까지 생산·보전·계획관리지역으로 세분화됩니다.
계획관리지역은 공장 설립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 어디에도 계획관리지역이라고 표기된 땅은 없지요.
그런데 일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해당 땅의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계획관리지역이라고 표기가 돼 있어야 인허가를 내 주겠다고 한답니다.
잘못된 법과 제도만큼이나 힘든 게 공무원들의 재량에 따른 규제이더군요. 기관간 협조도 엉망입니다. 한 예비 창업자는 경찰서에서 교통 수요와 관련한 공문을 지자체에 보내야 하는데 이 서류가 중간에서 증발돼 한달 가까이 인허가가 중단되기도 했답니다. 결국 다시 서류를 신청한 뒤 본인이 직접 받아 지자체에 전달했다고 하네요.
취재를 하면서 기업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규제 개혁’이 단순한 엄살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공무원들조차 어떤 규제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한국의 기업 환경이 가야 할 길은 너무도 먼 것 같습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