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 후 처음으로 21일 카메라 앞에 섰다. 노 대통령은 외부 인사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열흘째 되는 21일 모처럼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오전 11시40분부터 1시간 동안 관저와 청와대 뒤편의 쉼터인 백악정에 올라가 사진 촬영에 응한 것이다.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받았지만 사진은 청와대 전속사진사가 대신 찍어 신문 방송사에 배포하기로 정리했다.
관저에선 갈색 한복 차림으로, 백악정에선 산책용 잠바 차림이었다. 관저에서 창밖을 응시하는 장면과 보고서를 읽는 모습,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함께 움트는 새싹을 바라보는 모습 등 모두 6컷의 사진이 공개됐고, TV화면용은 별도로 배포됐다. 노 대통령은 사진을 찍으면서 시종 담담한 표정이었고, 사진사에게 “수고하십니다”라고 간단히 인사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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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18일 한 참모를 만난 자리에서는 “견딜 만하다”면서 “바깥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아직도 외부 인사와는 접촉을 하지 않고 윤태영(尹太瀛) 대변인이 하루 두어 차례 노 대통령을 만나는 정도다. 주로 책 읽는 데 시간을 보내고 가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신문은 정치면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면까지 샅샅이 훑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참모들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된 심정”이라며 “납작 엎드려 있겠다”고 입을 모은다. 한 비서관은 “대통령이 관저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떼지 않고 매일 뒷산만 오르시는 상황인데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침울한 내부 기류를 전했다.
청와대 각 수석비서관실은 돌아가면서 ‘비상대기조’를 운용하고 있다. 일이 있든 없든 오후 10시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의 ‘말조심’ 지시 이후 유일한 대언론 창구인 윤 대변인은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에 하루에 한번씩 들르지만 ‘대통령은 어떠시냐’는 질문엔 “특별한 게 없다”며 함구하고 꽁무니를 빼기 일쑤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면서 일부 직원들은 ‘표정관리’를 하는 듯한 낌새도 엿보인다. 한 핵심관계자는 “야당에서 역풍을 자초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복귀하면 탄핵소추 중 직무 정지된 기간까지 임기를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편 대통령 국정과제를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도 이 기간 동안 ‘학습’에만 전념한 채 ‘개점휴업’을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