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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최영해/시국선언 내고 휴가간 의문사委

입력 | 2004-03-21 19:32:00


20일 오전 감사원은 긴박한 분위기였다.

전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대통령 탄핵소추 규탄 시국선언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이 주재한 간부회의에서 격론을 벌이고 있을 즈음 고건(高建)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고 대행은 전화를 받은 전 원장에게 “감사원이 특감에 나서 달라”고 지시했다.

결국 오전 10시경 공직기강을 담당하는 감사원 특별조사국이 특감을 맡기로 결정됐다. 오전 11시쯤 특조1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5명의 특감팀이 서울 세종로의 한 빌딩에 있는 의문사진상규명위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특감팀은 허탕을 쳤다. 시국선언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1급 상임위원(변호사)이 휴가를 가 버려 아예 조사를 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국선언에 참여한 34명의 직원 중 절반가량이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출근한 직원들도 낮 12시부터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고, 오후 1시부터는 하나 둘씩 근무가 끝났다며 퇴근해 버려 대면조사는 불발됐다.

궁여지책으로 특감팀은 한상범(韓相範) 위원장에게 감사통지서만 전달한 뒤 철수했다. 정작 서둘러 조사해야 할 시국선언의 배경이라든가 주모자 조사는 다음 순서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날 하루 종일 5명의 특감팀은 통상 마지막 단계에 하는 관련 법령 검토로 시간을 보냈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5월이면 없어질 한시적인 조직인 데다 민간인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엄연한 정부조직인 만큼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명분과 논리를 밝히고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지겠다는 당당한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게 정도다. 그런데도 이날 의문사진상규명위 관계자들이 보인 태도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는 느낌이다.

감사원이 설사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을 듣더라도 시국선언에 대한 진상조사에 앞서 의문사진상규명위의 복무기강부터 감사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