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실총 세 번째 방 서벽의 철갑으로 무장한 무사.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육군은 보병과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칼 창 활 도끼 방패 등의 무기를 소지한 보병과 기병은 각각 베옷 전투복 부대와 철제 갑옷을 입은 부대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가장 막강한 전투력은 철기군(鐵騎軍)에서 나왔다. 철기군은 말의 안면에 철판으로 마주(馬胄)를 씌우고 전신에 철제 갑옷(馬甲)을 입힌 뒤, 그 위에 긴 창을 들고 올라탄 쇠 갑옷 차림의 병사로 그려져 있다. 쇠 갑주로 무장한 철기군의 말을 ‘개마(鎧馬)’라고 불렀다. 중무장한 한 명의 철기군은 지금 탱크 한 대의 전력에 해당되지 않았을까. 철기군은 3세기에 벌써 등장한다. 동천왕(재위 227∼248년)이 위(魏)나라와 전쟁할 때 동원한 2만명 중에서 5000명이 철기군이었다. 대규모 기갑군단을 운영한 셈이다. 이를 보면 고구려의 군사전술은 빠름과 느림을 적절히 구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철기군단은 빠른 기동성이나 속도전과 함께 둔중하고 굳건한 위세도 보여 주었을 것이다. 》
○철기군 호위 행렬도 장중한 분위기 연출
4세기 후반∼5세기 초반 황해도 안악 3호분과 평남 남포시 덕흥리 벽화고분의 철기군은 묘주인의 행렬도에 보인다. 안악 3호분 안 칸 동북벽 회랑의 대(大) 행렬도는 묘 주인이 탄 소 수레를 중심으로 보병과 기병이 호위하는 모습이다. 현재 동벽에만 250여명이 이동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쇠 갑옷의 보병을 앞세우고, 긴 창을 비스듬히 든 옆모습의 철기군은 위아래로 4명씩 배치되어 있다. 행렬은 느리면서도 정연하고 장중하게 연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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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 벽화고분에는 안 칸 동벽을 가득 채운 행렬도가 있다. 묘 주인 유주자사가 13현의 관아를 순시하기 위해 이동하는 장면이다. 철기군은 위에 6명, 아래에 5명으로 행렬 전체를 호위한다. 철기군의 창에 장식된 물고기 모양의 깃발이 날린다. 안악 3호분보다 단출한 소규모 행렬이고 제법 빠른 움직임이다.
5∼6세기 중국 지린성 지안현 쌍영총 안 길에 그려진 단독 철기병의 모습은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쇠 갑옷 밑으로 말 다리의 벌어진 모습과 꾸불꾸불한 안장 장식물의 펄럭이는 깃발에 속도감이 실렸다. 또 말과 사람이 철제갑옷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당시 쇠를 얇고 단단하게 제련하는 단조(鍛造) 기술이 뛰어났음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철기군의 전투 장면은 5세기 지안현 삼실총 제1실 북벽에 그려져 있다. 성곽의 오른편에 두 장수가 말을 달리며 창으로 대적하고 있다. 오른편 흰 얼굴 가리개 마주의 기병이 양손에 쥔 창으로 찌르자, 붉은색 마주의 기병이 턱하니 상대의 창끝을 왼손으로 맞잡았다. 실전보다는 훈련인 듯하다. 홍백(紅白)군의 대표선수가 나서 시범을 겸한 전투 경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 위에도 홍백 갑옷의 두 장수가 엎드려 맨손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위엄에 찬 철갑무사 ‘묘실 수호신’으로
보병도 쇠 갑옷 부대를 운영했다. 삼실총 세 번째 방 서벽에 그려진 무사(武士)는 험상궂은 얼굴 표정으로 미루어 불교의 사천왕상 같은 수호신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런데 목을 보호하는 경갑(頸甲)을 댄 갑옷의 모습, 왼손에 쥔 고리가 둥근 칼 환두대도(環頭大刀)와 쇠못이 박힌 신발 등은 다른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갑옷 보병과 흡사하다. 특히 이 무사가 신은 것과 같은, 밑바닥에 쇠못을 박은 금동제 신발이 평양지역에서 출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