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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의원직 총사퇴’ 철회 떳떳지 못하다

입력 | 2004-03-22 18:24:00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직후 공언(公言)했던 의원직 총사퇴 약속을 철회한 것은 유감이다.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꾸지람을 달게 받겠다”고 머리를 숙였으나 기득권에 집착해 국민에 대한 신의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의원직을 버릴 경우 총선에서 통일된 3번 기호를 받을 수 없는 데다 50여억원의 국고보조금도 포기해야 하는 등의 정치 현실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명분을 둘러대도 국민 눈에는 열린우리당이 ‘탄핵 역풍’에 따른 지지율 급등에 고무돼 오만해진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對)국민 약속을 그렇게 헌신짝처럼 뒤집어도 되는지, 그것이 그들이 창당 이후 성토해온 ‘구태 정치’와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자기희생을 감내하면서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바로 새 정치 아니던가.

탄핵안이 가결된 지 열흘이 지났지만 국민은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비장한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울면서 애국가를 부르고, 의원직 총사퇴를 만장일치로 결의하면서 사퇴서를 썼다. 상당수 국민은 그들의 결연한 모습에서 거대 야당의 탄핵안 처리에 심정적 분노를 느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당시 썼던 사퇴서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다니 그때의 결의는 한갓 기만에 불과했단 말인가. 탄핵에 찬성했던 일부 야당의원이 여론의 역풍에 못 이겨 뒤늦게 탄핵 철회를 제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회주의적 처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국민에게 공언한 ‘의원직 총사퇴’는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가벼운 약속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현재의 지지 여론이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