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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마지막 늑대’…파출소 폐쇄 막아라 ‘鬪캅스’

입력 | 2004-03-23 17:46:00

서울 형사役의 양동근.


‘마지막 늑대’는 ‘웃겨야 산다’는 코미디의 강박관념을 버린 영화다. 폭력과 성(性), 욕설로 모자이크된 흥행공식과 거리를 두는 대신 상황 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과 캐릭터의 힘을 선택했다.

4월2일 개봉예정인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은 강원도 오지의 파출소 폐쇄를 막으려는 경찰관들의 황당한 ‘범죄의 구성’을 다뤘다. 범죄가 없어 파출소가 사라진다면 그 해답은 범죄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해 개봉된 스웨덴 영화 ‘깝스’를 연상시키는 소재다. 하지만 이 작품의 시나리오가 1998년 구상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써 혐의를 두는 것은 불필요한 일 같다.

○시골 경관-도시출신 형사 ‘사건 만들기’

극중에 등장하는 ‘네 마리 늑대’는 이 작품의 매력인 동시에 약점이다. 그들은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묶인 ‘사람 늑대’ 둘과 ‘진짜 늑대’ 둘이다.

서울의 강력계 형사 철권(양동근)과 시골 순경 정식(황정민). 격무에 시달린 끝에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꿔온 ‘서울 늑대’ 철권은 범죄현장에서 죽은 사람을 보고도 “죽었다. 이제 먹고 살 생각하지 않아 좋겠다”는 냉소적 독백을 내뱉는다.

시골 순경役의 황정민.

반면 농사꾼 출신으로 재수 끝에 순경이 돼 사명감에 불타는 ‘시골 늑대’ 정식은 범죄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환경에 좌절한다. 서울에서 전출 온 철권에게는 시골 파출소가 지상낙원이지만 정식에게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철권은 파출소 폐쇄 명령이 떨어지자 애인의 빚을 갚기 위해 돈이 필요한 정식을 꼬여 파출소 사수작전에 나선다.

영화는 상반된 캐릭터를 지닌 ‘두 늑대’를 ‘한 우리’(극중의 무위마을 파출소)에 몰아넣으면서 생기를 얻기 시작한다. ‘수취인 불명’ ‘와일드카드’에서 거친 아웃사이더였던 양동근은 ‘야수성’(野獸性)이 거세된 빈둥거림을, ‘바람난 가족’의 뻔뻔스런 바람둥이 남편으로 등장했던 황정민은 우직함과 촌스러움을 새로운 품성으로 부여받았다.

이 전략은 양동근 황정민이라는 두 배우의 캐릭터 뒤집기와 전체 분위기를 살리는데 안성맞춤인 느린 화법을 통해 재미와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는 음주운전 경운기 단속, 노인정의 고스톱 판 습격 등 우스꽝스러운 범죄 만들기에 경찰관, 스님, 문화재도굴범이 뒤엉키는 해프닝과 ‘시골풍’ 멜로를 끼워 넣어 웃음을 유도한다.

○경운기 음주운전 단속 등 곳곳 유머

하지만 이 작품은 ‘마지막’이라는 불길한 제목의 운명을 넘어서지 못한다. 잔잔한 웃음은 있지만 갑갑한 현실을 한번쯤 시원하게 잊게 해주는 ‘웃음의 절정’은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 ‘정말 잘 사는 게 뭐냐’는 웃음 속에 깔린 질문도 야생동물 보호와 문화재 보호라는 뻔한 결말에 묻혀 버렸다.

또 하나. 막판에 진짜 늑대가 나타나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을까. ‘사람 늑대’의 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진짜 늑대’의 오버 액션이다.

‘야생동물보호구역’ ‘여섯 개의 시선’의 제작부 출신인 구자홍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