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 당시 노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던 류학구씨가 19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79세.
경남 진주 출신인 류씨는 진주고보(14회)를 거쳐 만주국립대 하얼빈학원 러시아어과에 유학했다. 그러나 광복 닷새 전인 1945년 8월 10일 일본군에 징병되면서 소련에서 3년간 포로생활을 했고, 이후 소련에 정착했다.
류씨는 소련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연구원으로 모스크바에서 근무하던 80년대 말 한국 기업인을 만나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다시 이었다. 그는 소련 정부의 일본어 통역으로 일하는 한편 90년 당시 김영삼(金泳三) 민자당 대표, 김종인(金鍾仁)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소련 방문 때도 한국어 통역을 맡았다.
특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 직전 한국계 아내가 강도에게 살해됐지만, 내색 없이 정상회담 통역을 맡았던 일화도 남겼다. 노 대통령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그를 한국에 초청하기도 했다. 당시 류씨는 아내의 유해와 함께 귀국해 아내를 조국 땅에 묻었다.
이후 한국에 정착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류씨는 진주고보 1년 후배인 구자경(具滋暻) LG 명예회장의 도움으로 LG에서 한동안 근무했고, 90년대 말에는 세종연구소에서 일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재혼한 부인 유시나 류드밀라(한양대 교수)와 두 아들이 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