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한국 증시는 나라 안팎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크게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 종합주가지수가 1,000선을 넘어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주요 상장사의 1·4분기(1∼3월) 실적이 ‘어닝 서프라이즈(기대 이상의 실적)를 보일 것이라는 보고서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증시의 약세와 대만의 정정(政情) 불안 등 해외 악재가 집중된 23일에도 국내 증시는 장 초반 큰 폭의 하락세를 딛고 급반등에 성공했다.
그런데 요즘 여의도 증권가의 최고 화제는 주상복합아파트 ‘용산 시티파크’다. ‘당첨만 되면 수천만원의 웃돈(프리미엄)이 가능하다’는 분석 때문이다. 증권맨들이 주식 얘기는 안하고 ‘시티파크의 예상 경쟁률과 프리미엄 수준’을 놓고 갑론을박하며 장(場) 마감시간을 훌쩍 넘긴다.
청약 첫날 한미은행 여의도지점에는 오전 7시부터 청약자가 몰려들어 주변 일대가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양복을 말쑥이 차려입은 증권회사 직원들이라는 후문이다.
등락폭이 큰 한국 증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증권맨이나 개인투자자들의 ‘부동산 짝사랑’은 당연해 보인다. 수개월의 상승폭을 단 몇 주 만에 까먹는 한국 증시의 주가 패턴을 감안할 때 ‘개미’들이 마음 놓고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증권가의 고질적인 부조리(不條理) 행태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상장·등록회사들은 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을 이용해 회사측에 불리한 공시를 집중적으로 쏟아낸다. 기업주와 증권사 기업분석담당자(애널리스트)들의 주가조작 행위도 근절되지 않는다. 이래가지고서는 투자자의 신뢰는커녕 불신만 더해질 뿐이다. 이런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증권업계 종사자들이 앞장서서 부조리 추방에 나서야 할 것이다.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에 따른 피해는 투자자는 물론 증권업계 종사자들에게도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