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청난 적자에 대해 주주님들에게 사죄하는 날입니다. 우리끼리 싸우는 것은 좋지만 오늘은 노조위원장도 직원으로서 앞에 나와 주주님들 앞에 서십시오.”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사 4층 강당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정태(金正泰) 행장은 이낙원(李樂園) 금융노조 국민은행지부 노조위원장의 계속된 발언 신청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위원장은 주주 자격으로 김 행장의 경영 능력과 적자 속 거액 연봉 수령에 대한 도덕성 시비를 제기할 참이었다.
김 행장은 “7533억원이라는 적자 규모를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니 함께 사과하자”며 이 위원장과 기(氣) 싸움을 벌였다.
결국 이 위원장은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은행 경영 악화에 대해 노사가 함께 토론하고 행장의 연봉 산정 기준이 된 업적 평가를 다시 하자”고 제안했으나 김 행장은 답변하지 않았다. 한편 소액주주 정병호씨(74)는 이날 주총장에서 김 행장 등 적자를 낸 경영진을 호되게 꾸짖어 눈길을 끌었다. 정씨는 이 은행 주총의 단골손님.
정씨는 “경영진은 해마다 잘하겠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만 하고 정작 적자를 내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호통을 쳤다. 이에 대해 김 행장은 “다시는 오늘처럼 열악한 실적을 가지고 주총에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