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경매에 참가할 때는 출품되는 와인 리스트를 보고 구입할 와인을 미리 정해야 한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다음은 프랑스 보르도의 레드 와인 샤토 라투르 1961년산입니다. 세계적인 와인 전문가인 로버트 파커가 주저 없이 100점 만점을 준 와인입니다. 자, 29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290만원 안 계십니까? 290만원 나왔습니다. 300만원 없습니까?”
19일 밤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와인 경매 현장. 참가자들의 관심은 포도주 한 병이 누구 손에 갈 것인지에 온통 쏠려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가격이 400만원을 넘어서자 장내는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20세기 최고 와인’으로 꼽히는 1961년산 샤토 라투르. 이 포도주는 결국 560만원이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팔렸다. 박수 소리와 함께 아쉬움과 부러움이 섞인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와인 경매라는 다소 낯선 이벤트가 국내에서도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왜 와인 경매에 참가할까. 와인 경매가 국내에 정착할 수 있을까.
○ 왜 와인 경매인가
마셔서 얻는 즐거움, 자신의 와인 창고에 하나를 추가할 때의 흐뭇함, 값이 오른 뒤 되팔아 얻는 금전적인 이득.
와인을 구입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있다면 크게 이 정도가 아닐까.
우선 와인 경매에선 시중 가격보다 평균 20%가량 싸게 와인을 살 수 있다.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꼭 비싼 와인만 경매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날 경매 리스트에 올라온 와인 200여종 가운데 30여가지는 병당 5만원 밑으로 가격이 형성됐다. 값이 시중가보다 비싸게 올라가면 안 사면 그만. 마시는 게 목적이라면 와인 경매에 참가해서 손해 볼 이유가 전혀 없다.
두 번째, 와인 수집이 취미일 때 경매는 구하기 힘든 와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국내 와인 경매에 물건을 내놓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입상들. 대규모로 수입하지 않고 프로모션 차원에서 몇 병만 들여온 후 경매에 내놓는 경우가 많다. 이날 경매에선 전문 수집가로 보이는 몇 명의 참가자가 특정 와인에 집중적으로 구매 의사를 나타냈고 가격이 치솟았다.
마지막으로 돈을 남기기 위해 와인을 구입하는 경우. 전문가들은 아직 와인의 환금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개인이 보관한 와인에 대해선 품질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 본격적으로 경매 시장이 열리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전망이다. 이날 프랑스 보르도의 1등급 레드 와인인 샤토 무통 로쉴드 1934년산과 1944년산이 고희 기념, 회갑 기념 등의 타이틀을 걸고 200만원 정도에 나왔지만 모두 유찰됐다. 마시기엔 비싸고 투자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까.
○ 해외의 와인 투자
'20세기 최고의 와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샤토 라투르 1961년산 19일 열린 와인 경매에서 56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제공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는 18세기 중엽에 이미 와인이 리스트에 올랐다. 와인만을 내놓는 독립적인 와인 경매가 생긴 것도 1960년대 중반이다.
미국 뉴욕에서 와인 경매가 처음 열린 것은 90년대 중반이지만 뉴요커들의 구매력에 힘입어 단기간에 세계 최대의 와인 경매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맛이 더해지는 와인은 드물다. 매년 생산되는 와인 가운데 대부분은 몇 년 안에 소비된다. 수십년간 두어도 마실 수 있는 브랜드는 불과 25개 남짓. 게다가 와인의 가격은 원산지와 보존 상태, 수확 연도 등에 따라 그야말로 천차만별. 투자에 앞서 브랜드 인지도와 희소성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어쨌든 투자 등급 와인이 되려면 수명이 길어야 한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이 투자 대상 1순위로 꼽히는 이유는 품질과 지명도 외에도 수명이 검증됐다는 점도 크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와인은 품질은 결코 뒤지지 않지만 70년대 이후 본격 생산됐다는 게 투자를 망설이게 한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품질이 유지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
○ 와인 경매 참가에 앞서
국내의 와인 경매는 2개월에 한 번 정도 열린다. 올해 들어서는 서울옥션에서 독립한 조정용 아트옥션 대표(ilikewine@ilikewine.net)가 호텔에서 디너와 와인 경매를 함께 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와인 경매에 참가하려면 출품되는 리스트를 미리 구한 후 자신이 구입할 와인을 먼저 정해야 한다. 경매는 정확하면서 빠르게 진행된다. 경합이 붙지 않으면 보통 몇 초 안에 지나가 버린다. 시중가가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적. 낙찰받은 가격에 10%가량의 수수료가 붙는다는 것을 감안해서 가격을 올려야 한다.
투자 목적으로 와인을 구입했는데 보관 등의 실수로 변질되면 100% 손해다. 이런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와인 경매는 한 번쯤 참가할 만하다. 마치 게임을 하듯 직접 번호표를 들면서 느끼는 긴장감과 스릴은 그만큼 독특하다.
또 하나 주의할 점. 마셔서 느끼는 즐거움이 가장 큰 부류라면 와인을 손에 넣은 즉시 마시는 게 좋다. 혹시라도 가격이 크게 오른다면 코르크 마개를 여는 데 두려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