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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박영석의 인물스토리 2]젊은 날의 박영석

입력 | 2004-03-25 16:31:00


▽나무에 오르던 소년

어린 시절 나는 담벼락이건 지붕이건 가리지 않고 높은 곳이면 어디든 오르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무척 걱정하셨고 아버지는 매도 자주 드셨지만 나는 그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 몰래 기왓장 사이에 숨겨둔 딱지와 구슬을 꺼내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붕을 오르내리면서부터였다. 지붕을 기어 오르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 후로는 높은 나무만 보면 무작정 기어올랐다...

지붕이나 나무뿐만 아니라 담벼락도 잘 탔다. 마치 암벽 등반 하듯 벽 틈새에 손과 발을 짚고 높은 담을 타오르는 것이다. 중학교 때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어머니를 몹시 놀래키는 바람에 크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다. 친구 어머니가 이층에 계시는데 창밖으로 사람이 스윽 지나가더라는 것이다. 도둑이 벽을 타고 올라가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셨다고 했다. 그 때 벽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던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은 김 찬삼, 고 상돈, 아문센이었다. 나는 그들의 탐험정신과 용기를 깊이 동경했었다. 30여 년 간 3번의 세계 일주로 160여 개국 구석구석을 탐험했던 우리나라의 원조 세계 여행가 김 찬삼 선생의 10 권짜리 저서 '김 찬삼의 세계여행'은 그 시절 내가 가장 애독하던 책이었다. 책장이 너덜너덜 해질 만큼 읽고 또 읽으면서 미지의 세계를 누비는 상상력을 키웠다...

▽까까머리 고등학생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검은색 교복을 입고 시청 앞을 걷고 있었다. 1980년, 서울의 거리는 연일 시위대의 물결로 시끄러웠다. 갑자기 어디선가 박수 소리와 함께 와아! 하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시청 앞에서 카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곳에 시선을 던졌다. 커다란 활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국대학교 산악부 마나슬루 등정'

그 순간 운명의 여신이 쏜 화살은 내 젊은 가슴을 뚫었다. 온몸에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래, 바로 저거다. 내가 할 일은 저거다. 나는 산악인이 되겠다. 가슴속 불기둥이 솟구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공부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내 아이큐는 140이 넘었지만 성적은 늘 형편

없었다. 담임 선생님께 불려가 머리 좋은 놈이 공부를 안 한다고 혼나기 일쑤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공부 보다는 운동을 좋아했다. 군납을 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집안이 유복하여 여러 가지 운동을 배울 수 있었다. 초등하교 때는 수영, 등반, 태권도, 스케이팅, 고등하교 때는 유도와 사격을 했다. 그러나 운동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운동에 소질이 있다는 것은 아셨지만, 직업적인 운동선수가 되는 것은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도 희망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고 있던 내게 그 순간 인생의 목표가 정해진 것이다. 어릴 적 막연하게 키워왔던 꿈과 동경의 세계가 명확한 비전으로 내 d앞에 펼쳐진 것이다. 나도 저들만큼 할 수 있다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동국대 산악부에 들어가자. 그 것만이 내가 할 일이다.

목표가 생기자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성적은 바닥을 헤매고 대학에는 관심도 없던 내가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러나 마음 뿐, 실천에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는 체질이 아닌데다가 공부하는 습관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말았다. 입시학원에 등록해 재수를 시작했다. 여전히 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집중적으로 준비를 했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일, 떨리는 가슴을 안고 게시판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사범대 체육교육학과 합격자 명단에서 천천히 내 이름을 찾아 시선을 움직였다. '박 영석'이라는 이름 석자가 내 시야를 꽉 메웠다. 입학하자마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산악부에 가입했다...

▽첫 발을 내딛다.

동국대 산악부 회원이 되어 처음으로 올랐던 산은 도봉산이다. 난생 처음 암벽을 탔던 산이며 내게 진정한 등반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던 산이다.

도봉산에 오르기 전날 밤, 드디어 등반다운 등반을 하게 되었다는 기대와 선배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에 밤잠을 설쳤다. 머리맡에는 큰 맘 먹고 장만한 RF 크래타 등산화가 얌전히 놓여있었다. 대학생 처지로는 꽤 비싼 등산화였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에게 좋은 무기란 필수 아닌가, 새로 산 등산화를 쓰다듬으며 나는 전의를 다졌다.

드디어 도봉산에 올랐다. 석굴암 아래에 야영지를 정하고, 선배들에게 텐트치는 요령부터 배웠다. 그리고 밥 짓고 찌개 끓이는 일 등 온갖 귀찮은 일을 도맡아 했다. 신입생인 나는 싫은 내색도 못하고 식사 후 설거지 까지 해야 했다. 곧 술자리가 시작되더니 좀처럼 끝나지를 않았다. 피곤하고졸음이 밀려왔지만 먼저 텐트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산악부 분위기 상 선배들이 모두 잠들기 전에 후배가 먼저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동이 터서야 끝났다.

선배들은 모두들 취해 쓰러져 잠들었지만 나는 2학년 선배들을 도와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밥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침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는 선인봉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잠을 못자 정신이 없는 데다 배도 고파서 선인봉은 마치 바나나 송이들이 붙어있는 듯한 형상으로 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탐스럽던지 입안에 군침이 나돌 정도였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드디어 본격적인 암벽 등반이 시작되었다. 네 명씩 두 개 조로 나뉘어 각각 다른 코스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자신만만했는데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었다.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밤새 마신 술 탓에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겨우 몇 미터도 올라가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몸이 지치기 시작했다.

정상까지는 아직 한참을 더 올라가야 했다. 아래를 내려다 봤다. 자칫 발을 헛디디거나 크랙을 잘못짚었다가는 그대로 추락할 상황이었다. 육체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정신력 싸움이었다. 이를 악물고 올랐다. 그 와중에 무릎은 다 까지고 팔과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옷도 여기저기 찢겼다.

산악부 가입 후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기념비적인 등반이었지만 정상에 오르니 죽을 고생을 했구나 하는 생각만 들 뿐 의외로 담담했다. 다리를 뻗고 숨을 돌리다 보니 등산화 밑창이 그새 닳아 버렸고 앞부분은 입 벌어지듯 딱 벌어져 있었다. 등산화를 사는데 든 돈이 단 하루 만에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나의 첫 번째 등반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후로는 수없이 선인봉을 올랐다. 술을 마시다가도 산이 그리워지면 배낭 하나만 챙겨들고 도봉산이나 북한산으로 향했다. 적당한 취기, 바위를 비추는 달빛, 술을 마시고 타는 바위는 낭만적이었다. 사실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그때 우리는 이십대 초반이었다. 피는 뜨거웠고 두려운 게 없었다.

연국희기자 ykook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