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회 본회의장과 의사당 건물(왼쪽). 의원 1인당 면적은 한국 국회가 미국 영국 프랑스 하원 의회보다 많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국회가 초미의 관심사다. 꼭 20일 뒤면 총선을 통해 국회의 주인들도 바뀌게 된다.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로 어지러운 요즘, ‘그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지 들여다봤다.
1975년에 완공된 한국 국회의사당은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 최대다. 여의도 면적 80만평 중 국회의사당 부지는 10만평. 여기에 연건평 2만4636평의 면적에 지하2층, 지상 6층의 의사당 건물이 들어섰다.
국회의사당 외관에서 특징적인 것은 건물 위에 얹힌 밑지름 64m, 무게 1000t의 대형 청동 돔. 그리고 돔 아래 처마 밑에 건물을 빙 둘러 배치된 24개의 기둥들이다.》
○ 돔과 기둥의 권위
돔과 기둥의 의미에 대해 국회 홈페이지에서는 “의사당을 둘러싼 24개의 기둥은 24절기를 상징하며 또한 각각 대립된 의견인 동시에 이 대립된 의견들이 중앙의 돔과 같이 원만하게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진다는 의회정치의 본질을 나타낸다”고 해설하고 있다.
몇 년 전 한 일본기자가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같은 설명을 들었다. 그는 이에 대해 “일본 국회는 지붕이 삼각형 네 개가 모인 낮은 첨탑형으로 돼 있는데 그렇다면 일본국회가 시끄러워야지 왜 한국 국회가 더 소란스러운 것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사당 설계를 입안했던 안영배 전 시립대 교수는 “설계 당시 그런 의미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처음 의사당을 설계할 당시에는 돔이 없었는데 국회의원들의 요구에 의해 나중에 추가됐다는 것이다. 현재의 돔은 당시 의원들이 요구했던 돔의 높이보다 많이 낮춘 것이라고 한다.
안 교수에 따르면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민의의 전당이 행정 권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돔이 쓰였지만 아무래도 군림하는 이미지가 좋지 않아 현대 건축에서는 쓰이지 않는 추세다.
건축가들에게 국회 건물은 전체 균형을 고려하지 않은 권위주의 건축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건축가협회 관계자는 “국회의사당 설계공모를 할 때 설계 기간을 겨우 두 달로 설정한 데다 설계자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협동설계를 한다는 방식 때문에 건축계가 계획안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우여곡절 끝에 각 계획안을 절충한 합동설계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건물. 게다가 원래 계획에 없던 돔이 지붕 위에 얹히면서 건물의 전체적 조형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 민의의 커뮤니케이션
건축가 정기용씨는 “돔과 열주, 건물에 필연적 관계가 없이 짜깁기로 만들어진 건물도 문제이지만 ‘민의의 전당’이 일상의 주변, 도심과 호흡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유배된 듯한 느낌을 주는 장소에 건축된 것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양과 교수는 “건물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국회의원들은 정문으로 들어가 의원전용 VIP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는 반면, 국민은 250m 떨어진 뒷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등 민주적이지 못한 쓰임새를 지닌 현재의 의사당은 개조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럼 국회의사당의 본회의장 내부는 어떤가.
한국 국회 회의장과 영국 미국 프랑스의 하원 의회 회의장을 비교해보면 한국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이 가장 넓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의자를 약간 돌리고 몸을 한껏 옆으로 기울여 옆 의원과 대화하는 모습을 TV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재프랑스 건축가 임우진씨는 “프랑스 의회인 아상블레 나시오날은 의원석의 경사가 급하지만 단상과 의원석 사이의 수평 직선거리가 가까운 구조인 데 비해 한국 국회 본회의장은 의원석의 경사가 완만하며 단상과 의원석 사이가 먼 구조”라는 점에 주목한다.
또 프랑스나 영국, 미국 의회의 의원석은 개인 좌석 구분이 없는 기다란 벤치형으로 서로 어깨가 스치는 간격으로 앉는다. 반면 한국 국회 의원석은 넓은 개인 좌석으로 분리돼 있고 서로 말을 하려면 몸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수준.
임씨는 “프랑스 의회가 무대와 객석간의 상호 호흡이 중요한 오페라 극장식 구성이라면 한국 의회는 무대에서 객석으로 정보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영화관식 구조”라며 “한국 국회 회의장의 구조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로 보기엔 다소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마이크를 사용하고 의원 수가 늘어나 증축을 거듭하면서도 의원석 자체는 확장되지 않았다”면서 “사람들간의 거리는 의사소통의 유형에 영향을 끼친다. 거리에 따라 서로 뜻을 이해하는 양과 질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 투명 개방형 의회
독일 연방의회 건물의 유리돔. 투명하고 개방된 의회를 상징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국회의사당의 개혁으로는 독일의 사례가 돋보인다. 독일 의회는 통일 이후 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긴 뒤 옛 제국 의회 건물을 연방의회 건물로 사용하면서 대대적 개수작업을 벌였다. 건물 옥상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고 원래 있던 돔을 없앤 뒤 그 자리에 유리 돔을 설치했다. 밖에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건물은 투명하고 개방된 의회를 상징한다.
한국 국회도 98년 ‘의사당의 조형미를 높이기 위해’ 돔을 기와지붕으로 개축하려는 공사를 추진하다 비난여론에 밀려 무산된 적이 있다. 국회 소프트웨어의 품질 개선 없이 하드웨어만 바꿔보려는 시도가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