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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영화파일]‘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감독 멜 깁슨

입력 | 2004-03-25 16:53:00

동아일보 자료사진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벤허’로 아카데미에서 무려 11개 부문의 상을 석권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신이여, 정녕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까?”

아마도 똑같은 얘기를 지금 멜 깁슨이 되뇌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깁슨은 와일러 감독과 달리 단지 감격에 겨워하는 얘기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깁슨은 최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숱한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돈 방석에 앉은 것은 물론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얻어냈다.

하지만 한편에서 그는 수천 년 전의 예수처럼 할리우드 언덕 십자가에 매달아야 한다는 아우성에 시달리고 있다. 할리우드의 유대인들, 곧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깁슨에게 심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유대인들, 혹은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깁슨을 (영화적으로) 처형하고 싶어 하든 그렇지 않든 솔직히 우리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그보다 이 작품을 보고 우리가 놀라게 되는 것은 예수가 죽기 전 12시간 동안 정말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는 점과 유대인들이 과거에 정말로 못된 짓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 더. 깁슨이 사실은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교단의 신자라는 점이다.

깁슨과 극보수 가톨릭 신자의 이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겹쳐지지 않는다. ‘리셀 웨폰’ 시리즈에서 좌충우돌, 허무적 광기를 선보이는 이 액션의 왕자가 알고 보니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왠지 배반감을 느끼게 한다.

‘리셀 웨폰’뿐만이 아니다. ‘매드 맥스’ 등 세계 영화 팬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된 그의 수많은 영화 속 모습은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복음을 전하려는 전도사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지난 1, 2년 사이에 호주 출신의 감독과 배우들이 대거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두며 이른바 ‘오스트레일리안 인베이전’의 분위기가 고조됐지만 깁슨은 훨씬 이전부터 선발대로 뽑혀 할리우드에 깃발을 꽂은 인물이다. ‘매드 맥스’ 시리즈 이후 그는 할리우드에 진출해 ‘전선위의 참새’ 등 로맨틱 코미디에서부터 ‘리셀 웨폰’과 같은 액션물, ‘랜섬’ 같은 드라마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쳐왔다.

그는 90년대 중반 들어 더 이상 할리우드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다는 듯 보다 개성 있는 연기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리 마빈 주연의 1967년 작 ‘포인트 블랭크’를 리메이크한 ‘페이 백’이라든지 빔 벤더스 감독의 ‘밀리언 달러 호텔’ 등이 바로 그런 작품들이다. ‘왓 위민 원트’처럼 다소 망가지던 모습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와 함께 깁슨은 감독으로서도 뜻밖의 자질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1995년에 만든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패션…’은 이제 그가 단순히 재능 있는 감독이 아니라 거장의 자질이 엿보이는 논쟁적 감독이라는 점을 입증시켰다.

고난을 따르라, 그러면 성공할지니. 깁슨은 이번 영화를 만들기 전, 자신에게 성령이 임했다고 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