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데뷔한 가수 씨엘(Ciel·본명 정명훈·28·사진)은 첫 음반을 내기까지 3년을 기다렸다. 보컬을 가다듬는데 1년, 음반 작업에 1년, 음반을 완성하고도 1년을 더 기다렸다. 지독한 불황으로 혼수상태인 음반계에서 신인이 얼굴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는지 몰라요. 나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인가 하고 캄캄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결국 기댈 데라곤 음악뿐이었어요. 음악은 마약 같아요.”
최근 음반이 출시되자 그는 서울시내 대형 매장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자기 음반 한 장을 직접 사기도 했다. 그는 “모든 시선이 나를 쳐다보는 듯했지만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냉엄한 프로의 세계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내민 타이틀곡 ‘어나더 데이(Another Day)’는 브랜포드 마샬리스가 이끄는 재즈 밴드 ‘벅샷 레퐁크’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 허스키 음색으로 솔을 애절하게 해석하고 있는 그의 보컬은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준다. 여린 임재범의 느낌을 주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는 “스팅 노래의 도회적 느낌을 연상하며 불렀다”고 말했다.
이 노래는 KBS2 시트콤 ‘달려라 울 엄마’에서 이원종의 테마곡으로 삽입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발라드의 흐느낌을 강조한 ‘사랑이었어’ ‘플라이 어웨이’를 타이틀곡 후보로 생각했으나, ‘어나더 데이’가 호응을 얻자 타이틀곡으로 선정했다.
‘사랑이었어’는 곡의 흐름이 여느 발라드와 다름없으나 단아한 피아노의 한 음 한 음과 공명하는 대목이 매력적이다. 여덟 번째 트랙의 ‘꿈’은 경쾌한 재즈풍의 발라드로 고음에서 갈라지는 허스키가 호소력 짙다. 이 노래의 가사는 실연의 체험을 그대로 담았다.
씨엘은 라이브 무대에서 자신을 포함한 7인조 어쿠스틱 밴드 ‘씨엘스 밴드’로 활동할 계획이다. 그는 “실내악처럼 듣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는 사운드의 밴드로 꾸릴 예정”이라며 “이 밴드야말로 나의 강점이자 나를 다른 가수들과 차별화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밴드 멤버들은 그가 부산에서 1990년대 후반 무명으로 활동할 당시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사이다.
허 엽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