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경기도 관찰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고려시대 5도를 시찰하던 안찰사제도를 이어받은 관찰사는 지방에 상주하면서 행정과 군사, 사법을 총괄한 지방장관이었다. 종2품의 고위직으로 감사(監司), 도백(道伯), 방백(方伯)으로 불렸다. 임기는 1년이었으나 재임한 경우도 많아 조선시대 경기도 관찰사들은 모두 300명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문화재단이 최근 출간한 ‘기백열전(幾伯列傳)’은 조선 태조부터 순조 때까지 경기도 관찰사 279명의 행적을 담고 있어 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조선 최대 건국공신인 정도전에 맞서 태종 이방원을 도왔던 하륜이 손꼽힌다. 태종 2년 경기좌도 관찰사를 지낸 하륜은 조선의 새 도읍을 계룡산으로 정하는 데 반대해 오늘날 서울의 탄생에도 일조했다.
조선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인 김종직은 성종 때 경기도백을 지냈다. 그는 단종 폐위를 비판한 조의제문으로 인해 부관참시를 당했다.
병자호란 때 명분보다는 실리를 주장했던 주화파 최명길과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거두였던 최익현이 같은 경기관찰사 출신이란 점도 흥미롭다. 정조 때 남인 세력의 영수였던 채제공은 관찰사를 지낸 뒤 수원 화성의 축조를 맡기도 했다.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는 경기감사에 임명됐다가 부임이 늦는 바람에 파직된 기록이 남아 있다.
경기도 관찰사 중 벼슬이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은 신흠 최명길 채제공 등 23명에 이른다. 좌의정과 우의정까지 합쳐 정승에 오른 인물은 59명이었다.
저자인 강대욱 전 경기문화재단 편집주간은 “관찰사는 외직이었으나 경기감영이 현재의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 자리에 있어 조정의 정세변화를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던 만큼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들이 많았다”고 분석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