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점의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가 1656년 50세 때 그린 자화상(왼쪽)과 5년 뒤인 1661년에 그린 ‘바울 모습을 한 자화상’.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50세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50대는 다시 시작하기 너무 늦다. 40대에 승부하라”는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구본형 지음/382쪽 1만2000원 휴머니스트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오르고, 온갖 양념과 야채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변화경영 전문가로 불리는 저자가 마흔아홉 살의 고비를 막 넘기면서 자신의 지나온 10년을 자전적으로 정리한 이 책은 위와 같은 찬사로 시작한다.
그러나 마흔 살은 ‘마(魔)의 나이’다. 일찍이 공자는 삶에서 일체의 의혹이 사라졌다 하여 불혹(不惑)이라 불렀지만, 21세기 한국적 현실에서 마흔은 미혹(迷惑)에 더 가깝다.
청춘을 불살랐던 일터에선 ‘사오정’이라는 이름의 멸종동물로 분류되는 씁쓸함을 감내해야 하고, 젊은 남자의 벗은 몸이 우상시되는 TV가 지배하는 가정에선 허물어져가는 육체를 감추기에 급급해야 한다. 자녀들이 장난감처럼 다루는 디지털기기 앞에선 사자와 맞서는 검투사처럼 식은땀이 배어나는 손바닥을 닦아내야 한다.
이 책은 그 터널 같은 시절에서 살아남은 저자의 영웅담일까. 일부는 그렇다. 그는 본디 역사학도였다. 그러나 1980년 은사가 강압에 의해 강단을 떠나는 것을 보고 한국IBM이란 안정된 직장으로 자리를옮겼다. 16년의 직장생활을 보내고 마흔셋이 됐을 때 우연히 쓴 책(‘익숙한 것과의 결별’)으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리고 마흔 중반이 됐을 때 20년이나 익숙했던 직장과 결별하고 ‘변화경영연구소’라는 개인연구소를 차리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성공했다.
그래서 그는 “40대는 사표를 써야 할 나이”라고 당당히 외친다. 50대가 되면 뭔가 다시 시작하기에 늦기 때문에 늦어도 40대 중반에는 적극적으로 인생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40대는 죽어야 살 수 있는 나이라고.
동시에 이 책은 처절한 고백성사이기도 하다. 마흔과 함께 찾아온 불면과의 동침, 건망증과의 동행, 그리고 쇠락해가는 육체에 대한 공포와 그에 따르는 젊은 육체에 대한 갈증 등이 문학적 향취가 물씬한 문체에 담겨 있다.
열한 편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시작 부분은 작가가 죽음의 문턱에 갔다 돌아온 경험을 단편소설 형식으로 형상화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일의 문필가 잉게보르크 바하만이 쓴 일곱 편의 독립적 글을 모은 ‘삼십세’를 의식하고 있다. 마흔의 출구에 서서 그 입구를 응시한 이 책의 관점은 서른의 입구에서 쓰인 ‘삼십세’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경제경영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실험적인 이런 글쓰기를 저자는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인생의 경영자는 곧 자신이며 자아발견이 곧 자아실현의 토대라는 깨달음을 자기 사례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이는 개인사로까지 응축된 미시사적 접근과 ‘변화의 핵심은 곧 자아발견’에 있다는 자신의 경영이론을 접목시킨 시도라는 점에서 그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