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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이 천사]인천 장봉島 방문진료 김선혁씨

입력 | 2004-03-26 18:34:00

혜림원 의료실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김선혁 원장. -사진제공 장봉혜림재활원


섬은 닫혀 있다. 병원도 약국도 없다.

섬사람들은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참고 넘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마음마저 닫고 살아가던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육지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

인천에서 서쪽으로 21km쯤 떨어진 외딴섬 장봉도(인천 옹진군 북도면).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이 생기면서 오가기가 다소 편해졌다지만 그래도 영종도에서 다시 뱃길로 40분은 더 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응급환자라도 생기면 사정해서 고깃배를 얻어 타고 인천까지 2시간가량 뱃길을 헤쳐 나가야 했다. 이 곳에 800여명의 주민과 관인 장애인복지시설인 장봉혜림재활원 소속 정신지체장애인 90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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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의 김선혁(金善赫·49) 부천내과 원장은 17년째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한 번 이상씩 이 곳을 찾는다. 약품을 기증하고 정신지체장애인들과 섬 주민들의 건강을 돌봐준다.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8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우연히 방문한 장봉도에서 정신지체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시작한 일이 어느덧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가 됐다.

부천에서 출발하면 2시간 반 이상 걸려 버스와 전철 그리고 배를 7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여름 휴가철이면 북적이는 관광객들 때문에 월미도에서 영종도행 배를 타기 위해 4시간 이상 기다리기 일쑤였다. 겨울이면 난방도 안 되는 통통배에서 몇 시간 동안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덜덜 떨어야 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어디가 아프다는 발음도 제대로 못하지만 자신을 만나면 마음속까지 털어놓는 혜림원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이들은 김 원장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머리가 하얀 탓이다. 이들은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없는 병도 꾸며낸다. 이때문에 그가 이 곳을 방문할 때면 항상 40∼50명의 장애인들이 진료소 밖에서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다. 김 원장은 2년 전 혜림원의 추천으로 모 사회복지재단에서 주는 의료봉사상을 수상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며 이를 거부했다.

혜림원은 지난해 그에게 알리지 않고 다시 후보로 추천했고 마지못해 상을 받은 그는 상금 2000만원을 모두 혜림원에 기부했다.

혜림원 이한영 관장은 “김 원장은 1999년부터 혜림원의 촉탁의로 지정돼 국가보조금으로 매달 100여만원의 급여를 받지만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며 모두 혜림원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인터뷰를 끝까지 사양한 탓에 기자와 간단한 인사만 나눈 김 원장은 “혜림원에서 원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보육사와 간호사들이 정말 훌륭한 분들”이라는 말을 남겼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